김희수 목사(구리성광교회)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하심을 믿고 더욱 기도합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 김희수 목사
지금 대한민국은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과 슬픔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여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북한에서는 큰 것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생각나는 말씀은 본문의 말씀입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내용을 보면 비방하는 주변의 사람들로 인하여 크게 낙심하고 불안해하며 슬픔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10절)

하나님을 믿는 자가 당한 절망적인 상황에 불신자들이 조롱하며 하는 말이 “네가 믿는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느냐?”, “너를 도와주지 않는 하나님이냐?”, “하나님이 살아 있다면 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많은 기독학생들이 있고 그의 가족들이 있습니다. 혹시 그 가족들 중에 누군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렇게 하실 수 없는 데’ 하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나아가 주변의 사람들이 혹은 믿지 않는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인류역사 가운데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사고로 인해 모두가 경각심을 가지고 책임감과 안전의식과 제도가 제대로 세워져서 또 다른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하면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한 알의 밀알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 인간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를 죄악의 파도 속에서 건져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믿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3절)

우리들도 이 땅에 살면서 세월호 침몰 사건 같은, 말로 할 수 없는 침통한 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네가 믿는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하는 비방과 조롱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국가적 절망적인 상황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낙심에 빠졌습니다. 불안과 안타까움, 걱정과 근심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했습니다. 그 때에 그에게 소망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며 날마다 새롭게 다가옴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애 3:19~22).

여호사밧왕 때 모압, 암몬, 세일 자손들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러 왔을 때 모두가 두려워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금식을 선포하고 온 백성과 더불어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대하 20:12). 결국 하나님께서 환난 가운데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왕과 온 백성이 즐거워하며 찬양을 드리고 유다에는 평강이 있게 되었습니다. 눈물로 통회하고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절)

시편 기자도 주변의 상황으로 영혼과 마음이 상하고 낙심과 불안이 있었지만 생명의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할 때에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5절)

강대국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을 바라볼 때 불안하기만 합니다. 예상치 못한 재난에 허둥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집니다. 북한은 항상 공격적인 성향으로 위협하고 내부에서는 이념적인 갈등과 양극화의 문제 사회 안전에 대한 불신감 속에서 살고 청년 실업률, 자살, 집단이기주의, 생명경시 풍조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문제들 속에 불안하고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며,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집니다. 죽음마저도 절망이 아닌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절)

성도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낙심하지 말고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바라보며 기도하게 될 때에 선하게 모든 것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우시고 은혜를 주시므로 주님을 찬송하게 만드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찬송하리로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2~3)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너무나도 많은 고난을 만나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선고를 받은 자 같이 되었으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함께 하심으로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확실히 믿기는 지금은 이해가 잘되지 않아 슬픔과 절망적인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훗날 하나님의 선하게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주님을 찬양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고 많고 환난과 슬픔이 많은 인생 보이는 곳에 소망을 두지 말고 보이지 않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세상에 빛으로 복음을 전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고 환난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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