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헌신적 섬김은 현지 사역 건강한 씨앗 돼
무조건적 긍휼보다 자립심 키우는 관심·훈련 필요

지난 4월 초 몽골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 아디야수릉 씨(26세)가 신당파출소 앞에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빚을 갚으러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최근 일자리가 줄고, 불법체류자로 남게 되면서 신변을 비관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렇듯 최근 들어 이주민 노동자들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늘어나고 있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민 노동자를 위한 일에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주민들 한국교회가 품는다
아디야수릉 씨는 홀로 몽골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4년 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울산에 친척들이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 자주 왕래하지는 못했고, 돈 문제와 외로움 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주변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알리기 위해 경찰서 앞에서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안타까워했다.

▲ 몽골에서 온 이주민 노동자 아디야수릉 씨의 장례예배가 왕십리교회 주관으로 고인이 사망한 신당경찰서 부근에서 열렸다. 아직도 한국교회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이주민들을 위해 앞으로는 현지인 리더십을 키워 신앙의 자립을 도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아디야수릉 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은 한국교회였다. 왕십리교회(맹일형 목사) 몽골어예배팀이 이 소식을 듣고 아디야수릉 씨의 장례 및 각종 일정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아디야수릉 씨는 교회도 다니지 않았지만, 왕십리교회는 근처 지역에서 일어난 외국인 노동자의 사연을 외면할 수 없었다. 몽골 고향 동포들 20여 명은 4월 6일 고인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장소에서 조촐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털어 귀한 헌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몽골어예배 담당 민병윤 목사는 “조화와 조촐한 현수막이 전부였지만 함께 울어줄 따뜻한 이웃이 있고 교회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족과 관내 몽골인들에겐 위로가 되었다”면서 “특히 몽골어예배에 참석하는 몽골인들이 스스로 긴급대책을 마련해 자발적으로 고인을 도와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타 교회 목사도 100만원을 쾌척해 장례를 도왔다. 빈소도 마련하지 못해 시체 안치실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는 눈물바다였지만 한국교회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진행됐다. 몽골에서 도착한 고인의 누나 설렁거 씨는 “한국교회의 헌신에 감사한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비록 아디야수릉 씨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죽음과 한국교회의 사랑은 몽골 선교의 씨앗이 됐다. 설렁거 씨는 현지 교회와 연결됐고, 울산에 머물던 고인의 친척도 지역교회를 방문했다. 아디야수릉 씨를 담당했던 신당경찰서 소속 경찰까지 교회의 섬김에 감명을 받아 왕십리교회 예배에 출석했다.

민병윤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전도와 사역도 중요하지만 한국교회가 직접 섬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주민들을 위한 따뜻한 행동이 가장 먼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조건적인 긍휼보다 리더십 키워줘야
이주노동자 40만 명, 결혼이주자 25만 명, 유학생 10만 명 등 우리나라는 이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2020년에는 다문화가정 학생 수가 100만 명에 이르고, 2050년에는 외국인이 전체 인구의 9.2%인 403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와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는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해외 선교가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단장:김삼환 목사)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이주민 선교 단체 중 119곳이 ‘교회 부설’로 가장 많았다. 기타 이주민기관이나 선교기관도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 대다수라 한국교회가 이주민을 위한 사역에 다양하게 헌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이주민 선교의 방식이 무조건적인 구제나 긍휼에서 그들의 자립을 돕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한국교회가 이주민 선교를 시작한 지 20년이 됐는데, 아직 현지인들이 자립해서 세운 교회 하나가 없는 것은 그동안 장기적으로 사람을 키우기보다 눈앞에 있는 불을 끄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앞으로는 현지인들이 독립적으로 교회를 이끌 수 있도록 자립을 돕고, 그들에게 리더십을 이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석창원 선교사(외국인근로자선교회 대표)는 “미국만 봐도 한국인들이 이끌어가는 한인교회가 활발한데, 한국에는 아직도 이주민들이 주도하는 교회가 없다”며 “이제 이주민들을 돌봄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현지 리더들을 키워내고 성령으로 무장시키는 것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덧붙여 석 선교사는 “선교 후계자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신앙을 키웠던 이주민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도 신앙을 유지하고 그들의 나라를 복음화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훈련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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