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신대원·조직신학)

 
그리스도가 없는 변종 에큐메니즘만 남았다

삼위일체 하나님 존재 사실상 방치하거나 거부…교회 본질 ‘가시적 친교’서 찾아
그리스도를 떠난 인류 연합과 일치 강조, 오히려 교회 분열 영구 고착하고 있다

 

▲ 문병호 교수
1. 정통 기독론을 부인:종교다원주의의 길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참 교회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으로 계심을 고백한다. 각각의 위격은 서로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 인격이시며,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니시고 고유한 사역을 감당하시나, 항상 함께 일하신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에 관해서 WCC는 단지 외양(外樣)적인 고백만 일삼고 있을 뿐, 이를 사실상 방치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WCC는 자신들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신경(325년, 381년)의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따르고 있다고 공표하고 있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자유분방하며, 그나마 정통 기독론을 선포한 칼케돈 신경(451년)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WCC는 성자를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유일하신 중보자로 여기지 않고, 단지 성부의 뜻을 이루어 가는 한 사자(使者) 정도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서 누구든지 그와 유사한 영적 사업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보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암암리에 표출해왔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진리, 다른 길, 다른 복음은 없다(요 14:6; 갈 1:7).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만이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요 8:32), 거룩하게 한다(요 17:17). WCC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은혜가 절대적이며 불가항력적으로 시여(施輿)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 땅에 오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상대적이며 일반적인 것으로 치부될 뿐이다.   

WCC는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머리로 여기는 무형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지상의 기구적, 조직적 교회 즉 가시적인 유형교회에만 집착한다. 이러한 WCC에 의하면 결국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Christless Church),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Christless Christianity)만 남게 된다. 진리를 묻지 않고 그저 모이기만 힘쓰는 WCC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거리끼는 것”이고 “미련한 것”(고전 1:23), 곧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벧전 2:8)가 될 뿐이다. 
 

2. 정통 구원론을 부인:다른 복음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자신을 향기로운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써(엡 5:2)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의를 다 이루시고(요 19:30), 그것을 믿는 자에게 차별 없이 주셨다(롬 3:22). 그러므로 주도 한 분이시며 믿음도 하나이다(엡 4:5).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천하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다(행 4:12).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셨으므로(엡 5:25), 그 은혜의 선물을 분량대로 받은 우리가 그의 몸 된 교회가 되었다(엡 4:7, 12). 따라서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오직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에만 그곳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마 18:20). 이렇듯 그리스도가 없다면, 은혜도, 은사도, 구원도, 교회도 없거늘, WCC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떠난, 그리스도가 없는 인류의 연합과 일치를 외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자신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다(요 17:21). 그러나 WCC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WCC라는 기구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추구하고 있다.   

WCC는 우리가 받은 보혜사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시라는 사실에는(롬 8:9) 관심을 갖지 않는다. WCC에는, 보혜사 성령이 임하면 그리스도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 안에 친히 사신다는 사실에는(요 14:16-17, 갈 2:20) 별로 주목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종교성 정도로 성령의 역사와 작용을 취급하는 경향이 현저히 드러난다. 그들은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도 나오신다(出來)는 사실을 부인한다(요 14:26; 15:26; 행 2:33). 그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와 다름없이 성령의 강림을 받았으되(눅 3:22), 그 “충만함”이 있었다는 점에서만 구별될 뿐이다(눅 4:1). 이렇게 본다면 그리스도는 한 특출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모범이 될 뿐, 우리를 위한 영원한 구세주는 될 수 없으시다.

보혜사 성령은(요 14:26) 아무 일한 것이 없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轉嫁)해주심으로써(롬 4:6)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는 양자의 영이시다(롬 8:15, 17). 그러므로 이를 받음이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롬 8:9).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는 그들의 총회 석상에서 온갖 영을 불러들이는 일종의 굿판을 벌인 정현경의 초혼제조차도 용납하였다. 이는 그들이 성령을 단지 범신론자들이 말하는 영적 생기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傍證)이 된다. WCC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외치지만, 몸이 하나라는 사실도, 성령이 한 분이시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엡 4:4). 한 성령의 도움이 없이 어찌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교회가 한 교회로 평안히 서 갈 수 있었겠는가(행 9:31)?
 

3. 한 그리스도, 한 성령, 한 교회를 부인

WCC는 성경의 진리 가운데 에큐메니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묻지 않고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다. 진정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이 신학적이며 교리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 교리가 바로서야 교회가 바로 선다. 교리가 바로서지 못하면 교회는 넘어진다.     

교회의 ‘하나 됨’은 교리의 ‘하나임’에 기초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상 추구된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교회가 진리로 하나가 되는 것을 그 목표로 삼았다. 초대교회의 교부들과 공의회들이 그러했다. 종교개혁이 ‘오직 성경으로’ 라는 원리를 제일로 삼은 것은 성경의 진리 가운데서 교회의 순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회복시키고자 함에 있었다. 

주님을 나눌 수 없듯이 교회도 나눌 수 없다(고전 1:13). 교회가 하나인 것은 오직 교리 안에서 그러하다. 그것은 ‘자격을 갖춘 일치(a qualified unity),’ ‘진리 가운데의 일치(a unity-in-the-truth)’여야 한다. WCC는 교리에 관한 고백은 하지만 교리 그 자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은 성경 비평주의,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에 젖어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非)성경적이며 반(反)교리적이다.

WCC는 연합이 아니라 타협을, 일치가 아니라 공존을 추구할 뿐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말하는 “협의회적 교제”를 통하여 “협의회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지상의 모든 교회를 WCC의 조직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뜻을 가지고 WCC는 교회의 일치를 넘어서 인류의 일치를 추구한다. 그것은 교회의 확장이라기보다 세속화와 종교다원주의화를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참되다(갈 1:6~9). 오직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 배운 것만을 자랑한다(고전 4:7; 딤후 3:14). 교회는 성경적 진리를 온전하게 붙들고자 했을 때 오히려 편협하지 않았으며 교회 본연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았다. 그들은 그것이 양보할 수 없는 진리문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분명히 가르치는 바는 하나님은 다원주의나 혼합주의로 자신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신 적이 결코 없으셨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일치는 그것이 진리 가운데 이루질 때만 평강이 된다. 그 진리는 참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 자신이다(요 14:6). 교회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야 한다(엡 4:15). 교회가 받은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롬 8:9; 빌 1:19). 그러므로 교회도, 진리도, 성령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교회의 본질을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에 두고 그 가운데 하나 됨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에큐메니즘이 나아갈 유일한 길이다.

교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분별하게 모이기만 힘쓰는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분열을 영구히 고착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오늘날 진정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 그것은 WCC 자체이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WCC는 선교를 가로막고, 교회를 해치는 일을 주도하고 있다. 제10차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목하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이를 분명히 방증하고 있다.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열린 제2차 WCC 총회에서는 “세상의 소망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모여서 무려 두 주일을 논쟁한 후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을 부인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를 보고도 WCC에 가입하기를 원하여 이탈을 감행한 일군(一群)의 교회가 이번 WCC 부산총회를 기화로 마치 한국교회의 대표라도 되는 양 버젓이 행색하고 있으니 어찌 개탄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과연 비진리(非眞理)에 이끌려 당을 지어 나간 유파(流波)가 추호의 가책도 없이 한국교회를 들먹이며 연합과 일치를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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