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 신대원)

 
‘교회의 하나됨’ 아닌 ‘인류의 하나됨’에 집착

‘협의회적 교제’ 절대 추구, 교회를 가시적이며 기구적인 것으로만 이해
‘비가시적 교회’ 본질에 대한 이해 결여, 진리보다 현상적 교류 우선한다

▲ 문병호 교수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실제적인 문제점은 대부분 그들의 잘못된 교회론에 기인하고 있다. WCC는 헌법에서 ‘다함께 공동의 소명을 완수하고자 노력하는 교회들의 교제’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본질을 호도(糊塗)하면서, 성경의 가르침과 정통 교리를 무시하고 무분별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WCC가 중심이 되어 한 몸을 이루고자 ‘협의회적 교제(conciliar fellowship)’라는 개념을 만들어 이를 마치 절대적인 가치라도 되는 듯이 추구하고 있다.

WCC는 ‘비가시적 교회(무형교회)’와 ‘가시적 교회(유형교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오직 교회를 가시적이며 기구적인 것으로만 이해한다. WCC에 의하면 교회는 단지 지상의 한 조직체에 불과하다. 우리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제 25장에서는 ‘보편의 교회’가 유·무형 교회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과 이러한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비가시적 교회(무형교회)’는 과거, 현재, 미래의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말한다(엡 1:13; 딤후 2:19). 그리고 ‘가시적 교회(유형교회)’는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예배와 성례를 드리며 경건한 성도의 삶 가운데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는 자들과 그 자녀들의 모임을 말한다(엡 2:19; 4:11~13). 그리스도 안에서 이 두 형태의 교회는 서로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는다(롬 12:5; 고전 10:17; 12:12, 27; 엡 1:22~23; 5:30). 즉 유기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 WCC는 이러한 이해를 전혀 결여하고 있다.

WCC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교회들의 협의회’라고 본다. 다만 그들이 말하는 교회는 단지 가시적 형태의 교회에만 제한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교회, 오직 영적인 교회, 비록 신앙상의 문제에서는 분열될지라도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서 하나가 될 교회를 상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개의 교회, 즉 가시적인 교회와 비가시적인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가 지상에서 가시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에 일치한다.”

WCC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에 대하여 고백은 하고 있지만 이를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기초시키지 않고 단지 지상의 가시적이고 기구적인 교회의 속성을 표현하는 말 정도로만 여긴다.

WCC는 교회의 본질이 성도와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연합에 있지 않고 성도 서로간의 가시적 친교에 있다고 봄으로써 비가시적 교회의 비밀을 제거해 버렸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무조건적 선택과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 성취를 외면하고 개개인의 주관적 신념과 공동체적 가치만을 교회에 남겨 두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연합된 성도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언약의 공동체이다. 교회를 ‘몸’이라고 부르는 한 그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교회를 ‘몸’이라 부를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 비가시적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비가시적 교회에 대한 인식 없이 교회를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성경은 교회가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진리를 분명히 선포하고 있다(엡 1: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WCC는 교회가 ‘주의 몸’이라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몸’이라는 점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의 존재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WCC의 입장은 그들의 최근 문건들 가운데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그동안 명목적으로나마 주장해 왔던 교회의 주가 그리스도라는 언급을 거의 폐기해 버렸거나 사실상 무화(無化)시켰다.

그들은 교회가 오직 믿음으로써 거저 값없이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의로 전가(轉嫁) 받게 된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점은 망각하고, 사람들이 각자의 종교적 신념이나 정서를 가지고 서로 모여 교제하는 곳에는 교회가 있다고 보는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성례의 실체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교제에서 찾는다. 

교회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서 성도의 교제는 중요하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성도 각자가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체들의 교제는 자생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한 머리에 붙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뒤따르는 결과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머리이심을 부인하면서 성도의 교제나 교회의 존재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렇듯 WCC 에큐메니칼 운동의 가장 원초적인 문제점은 그들이 사람들 상호 간의 교제를 성도의 그리스도와 연합보다 우선시할 뿐만 아니라 아예 그것만 내세우는데 있다.  

제10차 부산총회를 앞두고 WCC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진정한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차치하고 동양적 합일 사상이니 전통적 해원상생(解寃相生)이니 하면서 비성경적이며 반교리적인 이교적 이념만 내세우면서 건전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들의 속내는 ‘교회의 하나 됨’이 아니라 ‘인류의 하나 됨’에 있다.

교회가 세속을 복음의 진리로 감화시키고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모임이 있는 곳에 곧 교회의 출발이 있다고 그들은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교회론에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의 일치를 말하는 것은 교회가 없는 교회의 일치를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성경과 이를 교회적 고백으로 체계화한 정통 교리는 교회의 본질을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지체들인 성도들로 구성된 몸 곧 연합체로서 설명하고 그 속성으로서 단일성, 거룩성, 보편성, 사도성을 논의한다. 지상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복음의 진리에 터를 잡고 있을 때에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 교회는 교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교리는 교회가 서고 넘어짐의 조항이기 때문이다.

WCC는 교회의 본질을 가시적 교회의 교제로만 파악하고 있다. 비가시적 교회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진리보다 현상적 교류를 우선한다. 주님께서 나누어지지 않으시듯이 교회도 나누어질 수 없다(고전 1:13). 교회가 하나인 것은 오직 진리 안에서 그러하다. 교회의 하나 됨은 ‘자격을 갖춘 일치(a qualified unity)’ ‘진리 가운데의 일치(a unity-in-the-truth)’여야 한다.

어찌 진주를 돼지에게 줄 것인가? 어찌 극상품 포도나무를 주셨는데 들포도를 구하고자 하겠는가? 초대교회 이후 전개된 진정한 에큐메니즘은 성경의 참 진리를 수립하고자 추구되었다. 성경과 정통 교리의 가르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모이기만을 추구하는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단지 헛되고 속될 뿐이다. 성경은 이러한 것을 거짓된 것으로 여긴다. 과연 ‘거짓의 아비’는 누구인가?(요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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