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호 교수(총신대 신대원)

 
“WCC는 진리의 문제” 흔들림 없는 원칙 강조

죽산 박형룡-신학적 엄밀성 없이 추상적 종교 관념 공표…진정한 교회연합 아닌 무늬만 그려
해원 정규오-WCC 특징은 신신학, 단일교회, 용공사상…칼빈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1WCC의 신학에 대한 견해차로 말미암아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통합측이 이탈하였으며, 교단이 분열되었다. 이는 12신조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信徒揭要書)와 성경 대·소요리문답에 따른 개혁신학과 신앙에 그 자리를 둔 교단·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처음부터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신앙과 삶을 추구했던 보수적인 교단이 겪었던 신학적 분열이어서 더욱 아픔이 컸다. 통합측의 이탈은 연합과 일치를 외치는 WCC가 단절을 초래하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WCC의 신앙고백은 단지 명목적이며 그들의 활동은 교회의 부흥과 전도 그리고 선교에 역행한다. 한국교회가 WCC를 처음 접하고 겪은 혼동은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 WCC의 문제는 곧 진리의 문제라는 것을 간파한 두 분이 곧 죽산 박형룡 박사와 해원 정규오 목사였다. 전자는 신학적으로 후자는 교역(敎役)과 교정(敎政)에 주로 관련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였다.

2 죽산은 칼빈의 신학과 그를 계승하고 심화시킨 개혁주의자들의 신학에 심취하였다. 그는 영미의 보수신학과 대륙의 정통신학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또한 장로교의 신학과 정체(政體)를 견지한 교단신학자였다.

죽산의 신학적 노정은 단지 조직신학 전권의 저술과 강의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사변적이지 않았으며 당대의 신학적 논쟁들과 교회정치 그리고 성도의 삶에 관한 교리들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죽산의 초기 작품 <기독교 현대 신학난제선평>은 가히 시대를 지로(指路)하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서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과 신복음주의에 대한 비판도 다수 다루었다.

죽산은 WCC에는 “명백히 정의된 신학”이 없다고 단정 짓는다. WCC의 신학이 애매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자유주의에 젖어서 성경의 계시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WCC의 정강에 따르면 성부와 성령을 믿지 않아도 회원이 될 수 있으며,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예수의 신성을 종교적 감정이나 신적 의식 정도로 여기는 자유주의자들도 모두 포용하게 된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리는 교회의 판단기준이 될 수 없으며 각각의 교회가 그것을 따를 것인지의 여부는 자유에 맡겨지기 때문에, 그 신학은 산만(散慢)하며, “모순의 표적(表跡)”을 남길 뿐이며, “변증법적 긴장”을 고양시킬 뿐이라고 지적하였다.

죽산은 WCC가 “교의(敎義)는 분열하나 봉사는 연합한다.” 라는 말을 일종의 모토와 같이 여기고, 교리의 일치를 오히려 폄하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죽산이 WCC를 “자유주의 광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큐메니칼운동의 사상, WCC는 칼빈주의 정통 보수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장로교회에서 지지하고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에큐메니칼운동의 사상은 신신학과 단일교회 운동과 용공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산은 WCC가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교리적인 고백들은 신학적인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단지 추상적인 종교적 관념을 공표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죽산은 이러한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진정한 교회의 연합이 아니라 단지 무늬만 그려내는 “일양(一樣, uniformity)”을 추구하는데 불과하다고 단정하였다.

죽산은 WCC가 “속죄구령(贖罪救靈)의 옛 복음이 아니라 사회개량의 새 복음”을 전하고, “이교들과 대화의 광장”을 무분별하게 열고, 스스로 전락하여 “자유세계에서 공산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죽산은 선교가 복음전도 외에 다른 것을 본질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WCC가 추구하는 새로운 선교방법은 현세적 생명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사명을 개인의 삶과 인류사회의 평화에 두고, 타 종교와 화해를 모색하고, 복음의 전파를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고, 급기야는 구원이 타종교에도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에 이르게 됨을 지적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신복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복음주의 연맹(NA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도 WCC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정곡을 찌른다.   
   
3 한권의 책은 사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도, 시대를 움직이기도 한다. 죽산의 <기독교 현대 신학난제선평>을 거의 암송하다시피 한 해원 정규오는 여기에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과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읽었다. 해원은 죽산을 “최고의 스승이요, 신학과 신앙의 지도자요, 공사간 나의 인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위대한 인물”로 여기고 따랐다.

해원 정규오 목사는 뛰어난 목회자요 설교자였으며, 교정(敎政)의 지혜가 남달랐던 진정한 교회 정치가였다. 해원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변증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원은 신학과 삶이 어우러진 진정한 칼빈주의자였다. 제 33회 총회에 접수한 51인 신앙동지회의 진정서에 나타나듯이 해원은 “신앙은 보수적이나 신학은 자유”라는 당대 자유주의의 주장을 일축했다.

해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복음의 역사는 구원의 의를 다 이루신 중보자가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주님의 이러한 신인양성의 중보를 믿지 않고 예수를 단지 모범이며 지도자로만 여겨서 우리가 WCC의 경우에서 보듯이 세속주의, 종교다원주의에 이른다고 보았다.

해원은 성도와 교회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교회의 연합과 일치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 칼빈주의라고 보았다. 이러한 연합은 “자율주의”로 되지 않고 오직 “타율주의”로 말미암는다. 곧 비성경적인 자유주의가 아니라 성경중심주의에 따를 때 가능하다. 

해원의 WCC 비판은 그가 견지했던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주의의 필연적인 결실이었다. 해원은 WCC가 하나의 권력기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였고, 그들이 단지 협의회 중심의 가시적, 세속적 일치를 꿈꾸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WCC에 대한 해원의 입장은 분명하다. 그는 당시 교단이 WCC 총회를 탈퇴해야 할 명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피력하고 있다.    
이렇듯 해원은 WCC의 특징이 “신신학, 단일교회, 용공사상”에 있다고 보았으며, 이 세 가지는 칼빈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했다.

    
4 한국교회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 운동이 올바로 성경의 진리에 서 있지 않으면 첨예한 갈등을 조장하고 급기야 교회의 분열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약 반세기 전에 통렬히 경험하였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운동이 정치의 도구로 악용될 때의 폐해는 말할 수 없이 쓰라린 것이다.

WCC에 대한 죽산의 입장은 언제나 확고하였다. 그는 WCC가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고 진리를 해치는 가운데 단지 기구적 일치만을 외향적으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죽산의 이러한 반 WCC 사상은 해원에 의해서 충실히 교정(敎政)에 반영되었다.

해원은 WCC의 에큐메니즘이 당대 사조와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성경적인 기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직시하였다. 하나님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시점에 양인을 나란히 세우셔서, 교리를 떠나서 무분별하게 수행되는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경계를 허물고 결국 교회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음을 직시하게 하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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