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저녁집회 설교, 둘째날 저녁집회 설교, 둘째날 오후집회 설교


걸림돌이 디딤돌로

첫째날 저녁집회 설교  [마태복음 28장 18~20절]

피눈물로 지킨 ‘디딤돌 교단’ … 지금 필요한 건 눈물의 기도

▲ 이규왕 목사
(수원제일교회)
“오늘 우리 교단에 주신 시련은 하나님이 보시기엔 디딤돌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따라 우리 앞의문제들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한국교회는 세계교회 앞에 자랑거리가 참 많은 교회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자랑거리가 많은 교회가 됐을 때 세상 지도자들은 교회를 주목했습니다. 다 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는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할 만큼 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돈도 많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회가 힘 있게 되자 서로 교회 지도자가 되려고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권위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랑거리가 많아질수록 한국교회는 중세교회처럼 썩어져 갔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져 갔습니다. 삼손처럼 두 눈이 뽑혀져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세상이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예장합동측의 죄악입니다. 우리는 지금 쥐약을 먹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해독제를 먹고 살아나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힘은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강하고 아름다운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말씀만 영원합니다.

얼마 전 육군사관학교의 한 생도가 여생도를 성폭행했습니다. 그러자 사관학교 전체가 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관학교 교장이 자진 사퇴를 했습니다. 도의적인 책임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도의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은 책임, 돕지 않은 책임, 방관한 책임이 있습니다.

어릴 적 시냇가에 징검다리 있었습니다. 어른 보폭으로 보면 디딤돌이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걸림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단에 주신 시련은 하나님이 보시기엔 디딤돌입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돌이켜보고 회개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느냐에 따라 문제들이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교단이 어려워지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오는 제98회 총회는 걸림돌 총회가 아니라 디딤돌 총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장합동 교단은 한국 기독교의 희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교단을 어지럽힌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악을 배설물로 여겨야 합니다. 지금 죄악의 걸림돌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98회 총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죄악을 뿌리 뽑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교단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개혁과 정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에 반드시 따라가야 할 것이 용서입니다. 가장 많이 용서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교회에서는 용서가 없습니다. 잘못했다 고백하는 자들은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지난 날 어떤 죄를 저질렀든지 다 용서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후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교단이 되어야 합니다. 교단 지도자들인 우리가 후배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선배들이 피눈물 흘려 우리에게 물려준 아름다운 교단을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 합니다. 그런 교단이 되기 위해서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눈물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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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둘째날 저녁집회 설교 [출애굽기 3장 1~10절]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믿고 성령의 역사로 거듭 납시다

▲ 김승동 목사
(구미상모교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과 순교적인 피 흘림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80세의 양치기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80세의 양치기에게는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모세도 자신의 가슴에 어떤 새로운 비전을 담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 여겼던 그 시절,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십니다.

가시떨기나무 불 가운데로 모세를 부르시고, 아브라함의 언약을 400년 만에 이루는 출애굽의 영도자로 세우십니다. 본문을 근거로 두 가지의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 나의 인생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에 따르지 아니하고 내 뜻을 고집하면 분명히 실패합니다. 모세는 한 때 자신의 실력과 애국심으로 민족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동족들은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고 바로의 분노를 피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거기서 양을 치고 장가를 가고 어느덧 40년이 흘렀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위대한 계획, 히브리 민족을 구원하는 계획을 이미 마음에서 접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모세에게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때로 우리가 고민과 번민의 밤을 지새울 때, 애매한 고난으로 힘겨워할 때, 답답한 마음에 소리라도 마구 지르고 싶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주권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용하시는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여쭙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이끄셔서 히브리 민족의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위해 훈련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아멘으로 순종하면 기적의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 교회, 노회, 총회의 역사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지 아니하고 사람이 앞서면 분명히 실패합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임재하신 그 나무는 볼품없이 생긴 광야의 가시떨기나무였습니다. 그 나무는 연약해지고 볼품없어 보이는 모세의 현재 모습을 상징합니다.

또한 이 나무는 노예로 전락하여 핍박과 고통 가운데 메말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모습을 상징합니다. 그 광야의 가시떨기나무 위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합니다.

한국교회가 위기상황에 와 있습니다. 부흥의 소식이 잘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교회를 무시하고 멸시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광야의 가시떨기나무처럼 볼품없고 초라해져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타는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과 순교적인 피 흘림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합동교단이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 혼돈의 시대를 향하여 분명한 기준과 가치를 선포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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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회복을 기도합니다

둘째날 오후집회 설교 [룻기 1장 20~22절]

회개하고 자리로 돌아오면 다시서는 은총을 주십니다

▲ 이승희 목사
(반야월교회)
“우리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교단과 교회와 가정에 다시 추수 때의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면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룻기에서 나오미라는 말은 기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마라는 괴로움, 고통, 슬픔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작년 목사장로기도회 때 전국교회 목사와 장로가 모여 교단 100년을 기뻐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며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단은 마라처럼 풍족하기는커녕 비어있는 모습으로 모였습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가 우리의 관심이고 모두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첫째로 정직한 자기 인식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는 나오미의 교회가 아니라 마라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온갖 지탄과 소문, 갈등과 대립이 있는 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나오미가 될 수 없습니다.

마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설 때 가장 정직합니다. 사람 앞에선 합리화가 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둘째로 정직한 자기고백도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무기는 자기고백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실만한 곳에 세우십니다. 나오미는 개인적으로 회개했습니다. 남편이나 아들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께 잘못했다는 개인적 회개, 그리고 눈물의 회개를 했습니다.

그런 회개가 있을 때 용서가 있습니다. 이 자리는 목사답지 못하고 장로답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자리입니다. 목사답지 않은 말과 생각, 장로답지 않은 말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고백하는 기도회가 되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상적인 자기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나오미는 정상적인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자기회복이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베들레헴이었는데 가지 말아야 할 모압으로 갔기 때문에 마라가 된 것입니다. 마라와 같은 슬픔은 자기를 이탈할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와 교단을 섬기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해 기독교가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자녀가 이방인과 결혼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들을 이방인과 결혼시켜 형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삶을 무너뜨리면 나오미에서 마라의 현실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남편과 자녀들이 다 죽었고 베들레헴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더니 그 현장이 추수 때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교단과 교회와 가정에 다시 추수 때의 회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붙들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면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십니다. 나오미는 결국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랐습니다.

나오미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올 때 다시 우리를 장자의 교단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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