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교단’ 대표적 자부심이 되다


‘혼란기 총회’ 안정 위한 열정에서 출발
교회부흥서 국가번영까지 전방위 기도
‘정치 장소로 변질’ 우려 극복할 대책 필요


“주여! 우리 교단을 회생시켜 주옵소서. 성령으로 하나되어 교단이 부흥케 하옵소서”

1964년 제48회기 총회임원회(총회장:이수현 목사)는 혼란스런 총회를 안정시키고 총회산하 전국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자각하고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개최키로 전격 결의했다. 이렇게 출발한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타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가 부러워하는 예장합동의 선한 전통이 되어 50회째를 맞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장합동 하면 으레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떠오른다. 그만큼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교단을 넘어선 한국교회의 상징이다.

처음 기도회는 목사 중심으로 출발했다. 이어 2회째인 1965년 목사와 장로가 함께 모여 기도하기로 결의하여 심령부흥회로 진행됐다. 초기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박형용 박윤선 김희보 박사 등이 강의를 맡아 교단이 나갈 방향성을 제시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예장통합이 분열되어 나간 후 총회는 교단의 정체성을 놓고 혼란을 겪고 있었다. 거기다 WCC 에큐메니컬의 반기류는 상상을 초월했다. 보수·개혁주의만이 진리라는 얘기도 이때부터 형성됐다. 이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예장합동의 디딤돌을 놓은 진정한 일꾼이다.

초기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하루 한두 차례의 강의 이외에 참석자들이 모두 모여 총회산하 전국교회의 부흥과 나라의 안정을 위해 두세 시간씩 통성으로 기도했다. 총회임원회의 요청에 따라 외출을 삼간 채 줄곧 뜨겁게 기도한 점이 특징이다. 또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기도회 기간 중 하루를 택해 금식을 하며 기도한 것이다.

▲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교단 부흥은 물론 국가 안정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열정의 시간이다.
동계에 실시하던 기도회가 1970년대 초반부터 5월 초로 옮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아무래도 겨울에는 숙식이 불편하여 대규모 인원이 동시에 생활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대체로 기도회는 1970년대까지 교단의 부흥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제목이 많았으며, 1980년대에는 해외선교와 농어촌교회의 자립을 위한 기도제목도 단골로 등장했다. 국내 전도에 머물렀던 기도가 해외까지 눈을 돌린 것이다. 기도회의 지경이 그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회의 순서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것도 이 즈음이다. 그동안 교단의 정체성과 신학을 확립하는 특강이 주류를 이룬 반면, 1990년대부터 정치적 인사가 기도회에 등장하고, 기도자도 지역안배를 택하다보니 정작 목사장로기도회가 본질과 멀어진 양상을 띠게 되었다. 거기다 합심이나 통성기도보다는 대표기도자를 내세워 참석자들은 회중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점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1990년대부터 제비뽑기선거제도를 실시하기 전까지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보이진 않는 선거판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기도보다는 정치만이 난무하는 ‘거꾸로 가는 기도회’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이후 전국목사장로기도회는 평균 대표기도자만 40명이 넘을 정도로 정치도구화 되어 기도회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난도 높다.

총회의 혼란과 시련을 기도로 극복하자고 출발한 전국목사장로회가 초기 취지와 달리 상당히 변질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제50회를 맞는 시점에서 전국목사장로기도회를 상설기구화하여 기도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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