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강인춘
1932년 3월 초 춘천에서 조직된 기독교인 독립 비밀결사이다.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의 사상에 영향을 입고 강원도 일대에서 독립운동과 민족정신의 함양에 몰두하였던 감리교계 인사들은 마침내 장기적이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전개를 목표로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당시 인제교회 목사이며 홍천지방 감리사로 시무하던 남천우(南天祐) 목사를 중심으로 홍천교회 목사 유자훈(劉子勳) 그리고 김경한(金慶漢, 홍천읍) 이윤석(李允錫, 홍천읍) 김복동(金福童, 홍천군 서면) 어인손(魚仁孫, 춘성군 남면) 김재인(金在仁, 화천) 유진복(兪鎭福, 경기도 양평) 남궁모(南宮模) 등 20여 명의 기독교 인사가 춘천 기독교여자관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회합을 갖고 십자가당(十字架黨)을 결성하였다. 이는 오로지 기독교적인 진리의 실현을 전제로 조국과 민족을 압제로부터 구하자는 뜻의 기독교 민족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그 활동이 채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그 전모가 일경에 발각되고 말았다. 즉 1933년 모곡리 무궁화 사건이 일어나 이에 관련된 남궁억을 비롯한 모든 인사들이 일경에 체포되고 그들의 소지품 일체가 검열되었다. 이때 함께 조사를 받은 십자가당의 간부 김복동의 일기에서 일본 경찰은 십자가당의 조직 전모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십자가당에 관련된 모든 인사가 연행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고 중심 인물인 남천우 유자훈 김복동은 정식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1935년 1월 31일 경성지법에서 재판을 받아 실형이 선고되었다. (기독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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