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방언 소재로 한 특별한 기독교 극영화 <밍크코트>
가족이란 ‘존재의 무거움’ 통해 삶과 종교 문제 성찰 돋보여

영화를 보면서 누리는 기쁨 중 가장 큰 것은 대리만족과 대리경험이라는 선물을 받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어렸을 때 더욱 그랬다. 좁은 틀 안에 살았던 소싯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영화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모난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밖 우주를 여행하며 외계인과 만나고, 백설 공주를 눈앞에서 목격했으며, 시간 여행도 가능했었다. 당시 헐리우드키드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양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삶의 무게에 커져갈 즈음,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알게 될 쯤, 그제야 영화 속 주인공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 들인다. 그렇다고 영화라는 매체에 실망하거나 외면하진 못한다. 그만큼 필름의 회전이 재현하는 종합예술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를 다른 각도로 관람할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대신 등장인물들의 삶을 자기 자신의 삶과 대비해 보기 시작한다.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회상하고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반성을 하고, 때로는 희망을 얻고, 누군가는 귀감이 된다.

근래 상영되고 있는 기독교영화도 이러한 관객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귀감이 되는 인물의 삶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내 반성하고 올바른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게끔 돕는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인물은 오지의 선교사 혹은 순교자들이 중심이고 매번 존경스럽다. 그러나 현실성은 조금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헌신적이고 숭고한 삶은 훌륭하나 대부분이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천들의 실제 고민을 풀어내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기독교영화계의 현실임을 인정하려는 순간 영화 <밍크코트>를 마주하게 됐다.

최근 개봉한 기독교극영화 <밍크코트>는 값진 작품이다. 대단한 인물이 아닌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주위에 있을 만한 인물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의 삶을 반추하게끔 한다. 주인공 현순을 통해서 말이다.

홀로 딸 수진을 키우며 주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현순에게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다름 아닌 예언의 은사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만삭의 딸 수진과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입원중인 노모뿐. 힘든 우유 배달 일에도 방언기도를 하며 지극정성으로 노모를 병간호하는 현순, 그녀가 노모의 귀에다 속삭인다. 하나님으로부터 엄마가 깨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받았다고.

경제적 이유로 엄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자는 언니와 남동생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자신의 신앙만이 옳고 언니와 남동생의 신앙은 그릇됐다고 주장하는 현순. 동시에 형제들은 현순이 이단에 빠진 것이라고 결론 짓는 등 연명치료 중단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 <밍크코트>에서 주인공 현순과 수진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황정민(왼쪽)과 한송이. 신아가, 이상철 감독의 공동연출작 <밍크코트>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신념과 갈등의 문제, 가족 간의 발생할 수 있는 애정과 증오를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2011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차지했다.
여러분 주변에는 현순 같은 사람이 혹시 없는지? 현순은 자신만이 선민인양 행동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비주얼도 화려하다(?) 우유 배달부로 강아지 한 마리와 살고 있는 중년 아줌마. 탈모로 벗겨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언제 어디서나 예외 없이 베레모를 쓴다.

그렇다고 마냥 밉지만은 않다. 배우 황정민이 열연한 현순이라는 캐릭터는 페이소스까지 느끼게 해주는 인물이다. 나도 현순과 같았다면 비호감일 수밖에 없겠지, 억척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겠지 라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현순의 눈물어린 고백, ‘누구든 자기 친족,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신하는 자보다 불신하는 자보다 더 나쁘다’는 말씀을 거스르며, 오랫동안 형제들을 증오하고 있었음을 고백할 때 관객들은 그녀와 함께 절규하고 만다.

영화 <밍크코트>는 존엄사와 방언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통해 가족과 종교문제를 아우르는 특별한 가족영화다. 화려하지만 무거운, 따뜻하지만 잔인한 ‘밍크코트’처럼 자랑하고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존재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는 ‘가족’에 대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종교적 우월감을 휩싸여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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