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목사(성명교회·대신대 교수)

 
단호했던 이단 척결 역사는 위대한 유산

혼연일체되어 엄중히 치리…결과는 신속히 전달, 경각심 일깨워
교권싸움으로 변질된 이단대응 바로잡아야 장로교 분열 막아


▲ 정준모 목사
장로교는 악한 이단세력들과 끊임없는 투쟁역사 가운데 진리사수와 교회수호의 터전 위에 굳건히 세워졌다. 진리의 주가 되시며,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재림하시기까지 이단 및 비진리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 목회현장에서 이단들을 논박하면서 복음진리와 교리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목회사역을 감당하였다. 칼빈은 당시 아리안파, 마케도니아파, 그리고 반삼위일체론파 등에 대하여 논하는 중 ‘젠틸레’(Valentin Gentiles)를 향하여 ‘또 하나의 괴물’(another monster)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또한 삼위일체 이단 교리를 주장하는 세르베투스(Servetus)를 처형하기까지 이단에 대하여 철저한 경각심과 강경한 태도로 대처하였다. 현재 한국 안팎에는 교회를 향한 이단의 맹공은 상상을 초월하고 그 음모와 계략은 날로 더욱 악랄해지고 있다. 본 글을 통하여 장로교 이단 척결 역사 조명, 한국 장로교회사에 출현한 이단들, 한국교회 이단 척결 방안과 제언. 이단 문제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 장로교 제4회 총회:첫 이단 척결의 역사적 사건

한국 장로교회사에 처음 이단에 대한 기록은 제5회 독노회록에 나타난다. 당시 독노회회록에 따르면, ‘남평안 대리회’(당시, 노회를 의미함)의 보고서에 각 교회가 다른 교회와 상관된 것은 천도교 자유회 안식회이오며”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총회에서 이단 문제를 다룬 것은 1915년 제4회 총회이다. 당시 경기충청노회에서 ‘예수재강림제7일안식회’에 유혹을 받은 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에 대하여 총회에 헌의를 하였다. 이때 총회 정치부를 통하여 결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 교회 교리가 옳다고 하는 자에 대하여는 그 당회가 권면하고 만일 직분 있는 자에게는 권면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면직시키기로 하오며 그 교회로 가는 자에게 대하여는 그 당회가 강권하여 보아서 종시 듣지 아니하면 그 당회가 제명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오며”라고 결의하였다. 초기 한국 장로교 총회가 이단 대처 및 척결에 대한 당시 상황을 볼 때,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단은 초대교회사부터 나타난 것처럼 한국 장로교 설립 초기 때부터 복음전래와 함께 이단문제도 대두되었다. 둘째, 안식교 이단 문제를 두고 당시 조선평양신학교에서 발행한 <신학지남>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비판의 글을 썼다. 이는 이단교리에 대하여 당시 신학교 교수들이 신학적 문제에 대하여 민첩하게 대처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초기 한국 장로교회는 이단에 대하여 신학교, 당회, 노회, 총회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매우 단호하게 대응했다. 넷째, 이단에 빠진 자들 중에 직분자들에게는 권면, 면직, 제명시키는 등 성경적, 목회적, 법적 절차를 따라 매우 엄중하게 치리하였다. 다섯째, 장로회 정치원리에 따라 당회, 노회, 총회 3치리회를 걸쳐 결정할 만큼 신중하게 처리하였고, 또한 전국 교회에 속히 알려 이단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속히 대처하도록 하였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국 장로교단의 이단 관련 총회 결의 및 대책 수립

예수재강림 제7일 안식회(제4회, 1915년), 이단 징치 권징조례 법조문 결정(제7회, 1918년), 이용도, 백남주, 한준명, 이호빈, 황국주(제22회, 1933년), 자유주의 신학자 김재준(제38회, 1953년), 나운몽(제40회, 1955년), 박태선(제41회, 1958년), 신비주의 운동자 김화복, 박덕종, 양춘식 및 WCC, NCC 관련 목사 강사 및 집회참석 금지(제54회, 1969년), 박윤식(제71회, 1986년), 김기동(제74회, 1989년), 문선명집단 성화신학교 반대 및 제품 불매운동 및 김기동 정체 규명(제75회, 1990년), 이장림, 김계화, 김기동 신학 사상(제76회, 1991년), 트레스디아스 엄히 경계(제78회, 1993년), 예태해(제79회, 1994년), 이만희 무료신학교(제80회, 1995년), 다락방(류광수)(제81회, 1996년), 빈야드 운동(제82회, 1997년), 말씀보존학회(대표:이송오)(제83회, 1998년), 예수전도협회(대표 이유빈)(제84회, 1999년), 기독교영성훈련원(대표:박철수)(제86회, 2001년), 기독교영성훈련원(대표:박철수 및 예장합동혁신총회 남서울신학교(제87회, 2002년),  박윤식 관련 총신교수연구보고서 채택, 예수왕권세계선교회(심재웅), 진주초대교회(전태식)(제90회, 2005년), 이단조사연구대책위원회 신설(제91회, 2006년) 구원파, 정명석(제93회, 2008년), 변승우 목사(큰믿음교회)(제94회, 2009년), 이단 규정 및 해제 규정 채택(제96회, 2011년) 등이다.
또한 이단 대책을 위해 총회 차원에서 <주요 이단대책 종합자료집>, <이단, 사이비 연구자료집> 등 문서 발간, 이단관련 공청회 개회, 이단상담소 개설, 이단 규정 및 해제 규정을 마련 등 다각적으로 총회 차원에서 응징 및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일 일이다.

한국 장로교단 이단 척결의 현실, 대처 방안 및 제언

현재 한기총을 비롯하여 이단 규정에 해제에 대하여 다양한 입장과 이견 때문에 한국교회는 매우 혼란스럽다. 현재 교계가 안고 있는 이단 규정과 해제에 대한 현실적 문제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학적 객관성 문제이다. 이단 규정과 해제의 기준이 신학적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교단입장, 개인관계 등으로 주관적 판단으로 그 기준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이단 규정과 해제가 성경, 신조, 교리 등 객관적 표준에 근거하여 냉철하고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와 성도가 알도록 공포하여 이단 규정과 해제로 인한 피해를 최소한 줄여야 한다.

둘째, 신중한 판단과 결론이 요청된다. 이단 규정에 대하여 매우 신중 판단과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단 규정을 사사로이 결정했을 경우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반면, 이단 해제를 너무 무분별하게 행하였을 때, 그리스도의 몸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철저한 검증과 공인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이단 해제에 대하여 철저한 회개, 공개적 사과, 이단교육과 상담, 회개의 열매, 신중한 검증 등 공식 기관, 기구에 의한 공인된 절차가 따라야 한다. 이단으로 규정된 자나 신학적 이설을 주장하는 불건전한 신학자나 목회자에 대하에 대하여 철저한 절차를 통하여 해제를 하여야 한다. 충분한 검증이 되지 않는 채, 쉽게 이단과 이설에 대한 해제를 하고 또 다시 이단적 요소가 남아있을 경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지속적인 경계와 홍보 및 교육이 요청된다.

넷째, 복잡하고 살벌한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 이단 규정 및 해제에 대한 주변 상황들이 매우 복잡하고 살벌하다. 이단 규정과 해제에 대하여 신학적 객관성 보다 정치적, 교파별, 개인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한 현실이다. 이단 규정과 해제로 인하여 관련 기관이나 인사들이 회유, 협박, 법정시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섯째, 건전한 교단간 연대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교단 내 이단 규정의 명확성과 교단 간 연대 관계가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여러 교단이 존재한다. 교단별 이단대책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보다 더 철저하고 심도있고 명확하고 객관적 이단 연구와 규정, 그리고 해제에 대한 대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특히, 이단규정과 해제는 한 교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교단간 연대의식과 관계를 맺고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교파 및 교단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그리고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의 위치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 일러스트=강인춘
이단 앞에서 이단 문제로 싸우는 한국 장로교단

현 한국 교회는 이단과 치열하게 혈전을 벌이는 전쟁터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단 규정과 해제를 두고 정통교회 내부는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장로교가 연합하여 이단을 규정짓고 경계하는 일에 온 힘을 모아 함께 싸워도 힘겹고 어려운 지경인데, 형제와 아군끼리 좌충우돌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이단 규정과 해제를 두고 교단 내부, 교단간, 신학교간, 신학교 교수간 이단 다른 입장과 견해로 혼선을 빗고 있다.
현재 한기총과 한장총은 교권 정치 싸움터가 되어 신학적 싸움, 교단간, 교파간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교권 분쟁이 이단 빙자 싸움과 이단 옹호 싸움으로 전락해 버렸다. 연합체가 교단간 이단시비로 분쟁의 불씨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명목은 이단시비 문제이지만 실상은 정치 싸움, 교권 싸움의 현장이 아닌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정치적 야욕과 교권 정치로 찢어버리는,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교단간, 교파간 상대를 이단정죄 시비로 싸잡아 또 다른 분쟁과 분열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그 결과 교단간 연합으로 함께 이단 척결에 힘을 모아야 할 한국 장로교회가 한기총 사수파, 한기총 해체파, 그리고 한장총 고수파, 한보총 신설파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세게 마주 달려오고 있다. 한국 장로교회 교회지도자들은 함께 한국교회 연합과 이단 척결을 위해 정치적 기득권 십자가 아래 내려 놓고, 겸허한 태도로 대화의 창구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진리의 영되시는 성령만이 교권의 해독제가 되며 금권의 치유제가 된다.
필자는 교권 분쟁사를 보면서 이런 결론을 얻었다. 즉 “교권 분쟁은 결국 신학적 싸움으로 끝나고, 그 결과 교단과 연합체가 찢겨지는 아픔을 통감한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장로교 교리를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존 칼빈은 비겁한 분파주의가 아니라 폭넓은 교회 연합운동의 선구자였다. 칼빈 신학 사상의 보고인 <기독교 강요 4권> 1장의 29개 항목 중에서 19개 항목을 걸쳐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거듭 거듭 강조하였다. 그는 사돌레토에게 보낸 편지에 “그리스도의 한 영으로 결속된 교회 공동체에 불일치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교회라면 연합과 일치를 위해 서로 대화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미덕과 관용 자세를 가져야 한다. 칼빈은 교회의 진리 순수성뿐 아니라 교회 연합성을 함께 지킬 것은 강조하였다. 칼빈은 개신교 공통적 교리의 울타리 안에서 상호간 관용적 입장을 취할 것을 권고한다. 반드시 진리를 근거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진리를 교권화, 정치화해서는 안된다. 항상 교권 싸움은 진리를 빙자한 신학 논쟁, 이단 정죄로 분열과 분파로 주님의 몸을 찢고 찢어왔다.

한국장로교회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한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부끄러운 사실은 함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신조로 삼는 형제 교단과 교파간 싸움을 벌이고 양분의 지경까지 와 있다. 100년 전 황무한 이 조선 땅을 복음화 하기 위해 순교의 제물이 되었던 선교사들과 초대 성도들의 연합정신과 교회를 섬기는 고귀한 영성은 사라져 버렸다. 척결하고 싸워야할 이단 때문에 오히려 교단과 교파간 분쟁이 일어나고 또 연합체가 찢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안타깝고 서글픈 오늘의 한국 장로교회의 현장이다.
장로교 신학의 거장인 칼빈은 교회순결과 연합을 함께 중시했다. 진리 순결을 외면한 연합과 일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그러나 연합과 일치가 없는 분쟁과 분열을 조장하는 왜곡된 교권 정치와 싸움은 더욱 단호하게 배격해야 한다. 향방없는 싸움(고전 9:26)을 탄식했던 바울의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의 적수는 다른 입장의 형제교단이 아니라 바로 교회를 쟁탈하는 이단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단 척결을 위해 조건없는 연합전선을 펼쳐야 한다. 필자는 현재 또 다른 분열의 위기 앞에서 선 한국 장로교회를 바라보며 뼈아픈 가슴을 울먹이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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