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9)] 충남 남부
[한국교회 문화유산 답사기(19)] 충남 남부
  • 정재영 기자
  • 승인 2011.11.01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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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찾아가는 게 어디 철새 뿐인가

금강하구둑 ‘김인전 공원’서 시작, 이상재전시관·종지교회 거쳐
최초 성경전래지 마량진서 잠시 멈추고 대천수양관서 안식하다


가을의 금강변, 갈대밭은 무성하고 철새들은 떠날 채비를 한다. 파란 하늘을 고스란히 비치는 물결 위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⑤ 금강하구둑 김인전공원에 세워진 김인전 목사의 흉상과 공적비.
⑥ 김인전 목사가 민족지도자 양성을 위해 건립했던 옛 한영학교 터.

김인전공원과 한영학교

전라도 군산과 충청도 장항이 만나는 금강하구둑. 군산 쪽에서 기나긴 방조제를 따라 장항 쪽으로 건너가다 보면, 그 끝에서 깔끔하게 조성된 작은 공원 하나를 만난다. 공원 입구에는 근래 들어 새로운 이름을 단 간판이 붙었다. 김인전 공원. 귀에 익은 이름이다.

바로 전주 여행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전주서문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이자 전주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경재 김인전이 태어나고, 젊은 시절을 보낸 동네가 바로 이곳 충남 서천이다.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제4대 의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한 시대를 뜨겁게 살다간 그의 생애를 조명하는 작업이 요즘 고향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는 것이다.

공원 안쪽에는 김인전 목사의 흉상과 함께, 김 목사의 삶을 소개하는 공적비와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그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세대들에게는 친절한 교육자료가 될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입구를 장식하는 조형물이 삿갓과 기다란 곰방대라는 점이다. 삿갓이야 그렇다 쳐도, 목사의 직함을 가진 이를 기념하는 공원에 곰방대 장식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실상 김인전이라는 이름에 ‘목사’라는 직함을 붙이는데 익숙한 전주의 분위기와, 단순히 그를 애국운동에 앞장선 ‘선생’으로 기억하는 이곳 서천의 정서는 조금 다른듯하다. 그것은 김인전 목사의 묘소가 있는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쪽으로 옮겨가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동네 뒷산에 차려진 그의 묘소에는 추모비와 함께, 그의 행적을 간단히 기술한 안내판이 설치되어있다. 그러나 교육계몽가와 독립운동가로서의 자취만이 조명될 뿐, 어느 곳에서도 목사로서의 김인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무덤의 주인을 ‘김인전 선생’으로만 알고 있다. 기독교 순례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신실한 복음사역자로서 그의 모습이 감춰져있다는 것은 몹시 서운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묘소를 둘러 본 후에 놓치지 말고 살펴볼 대목이 하나 있다. 바로 묘소 앞에 세워진 아담한 기와집 한 채이다. 당초 이 자리는 한일합방 이듬해인 1911년, 김인전 목사가 가산까지 팔아가며 ‘한영학교’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조국의 광복을 도모할 인재들을 양성한 산실이었다. 훗날 서천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상당수가 한영학교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 제법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그러나 한영학교 자리는 그새 몇 차례 주인이 바뀌고, 건물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어 안타깝게도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현재는 개인 별장으로 사용되는 중이어서 외부인은 출입에 통제를 받는다.


이상재기념관과 종지교회

한영학교터에서 자동차로 불과 몇 분 거리인 한산면 종지리가 우리 여행의 다음 행선지이다. 종지리는 식민지시대의 설움을 안고 살았던 이 땅의 백성들에게 광복의 희망과 한민족으로서의 당당함을 일깨워 준 월남 이상재의 생가가 있는 동네이다.

이상재의 생가는 두 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쳐 충청남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면서 많은 관광객을 맞았다. 여기에다 얼마 전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월남이상재선생전시관’이 건립되고, 산책로와 부속건물들까지 조성되면서 이곳은 제법 규모 있는 역사탐방지로 변모했다.

특히 전시관 안에는 YMCA와 독립협회, 신간회 등을 통해 민족계몽과 자주독립에 앞장섰던 이상재 선생의 일대기가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성경 및 교리해설서 등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품들이 눈에 띄고, 선생이 요한복음을 읽다가 영감을 얻어 써내려갔다는 “萬事無求眞理外 一心相照不言中(모든 일의 해결책은 진리 외에서는 찾을 수 없나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비춰보면 한마음이어라)”는 시귀가 관람객의 마음을 찌른다. 어쩌면 복음과 진리에 대한 확신, 십자가 아래에서 나누는 형제애를 잃어가는 우리 세대를 향한 경구가 아닐는지.

전시관을 나와 생가터를 지나면 우뚝 선 종지교회의 모습과 마주친다. 종지교회 또한 이상재의 권유와 후원에 힘입어 세워진 유서 깊은 교회이다. 겨레를 그토록 사랑했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금도 교육을 통한 계몽과 농촌운동에 앞장서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마침 기자가 순례 차 방문한 날에는 종지교회의 어린이 이상재의 생애를 소재로 한 연극 준비에 한창이었다. 조상들이 입었던 도포와 버선 차림으로 월남 선생의 기개를 재현하고자 애쓰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조국의 미래를 꿋꿋이 짊어질 동량들의 면모가 엿보인다. 기념관을 지키는 관광해설사는 해마다 11월 중순 무렵이면 이곳에서 월남선생 추모행사와 백일장대회가 열려, 후세들의 애국혼을 일깨운다고 설명한다.


최초 성경전래지 마량진

이제 우리의 발길을 서쪽으로 돌릴 때이다. 한산에서 서천읍내를 거쳐 바다 쪽으로 계속 전진하다보면 마량진 포구가 나온다.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서해안에 몇 안 되는 명승지인 이곳이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마량진이 한국 최초의 성경전래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 관심이 쏟아졌다.

1896년 9월 4일 영국 함선인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탐사차 한반도 주변을 항해하다가, 마량진에서 잠시 닻을 내린다. 처음 보는 서양 함정의 출현에 놀란 마량진 첨사 조대복이 낯선 방문객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알세스트호에 직접 올랐고 그 배의 함장 머레이 맥스웰이 조대복에게 선물로 건넨 두터운 책 한 권이 우리 민족에 최초로 전해진 성경이었다.

이러한 기록이 부각되면서 지역교계를 중심으로 10년 가까이 마량진을 성역화하려는 노력들이 계속 이어져왔다. 2007년에는 한국최초성경전래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마량진에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성경 전래사를 소개하는 기념관과 세계 최대의 십자가상을 세운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수년째 공전중이어서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초성경전래지기념비 곁에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념상도 함께 건립되어있다. 성경번역 회의를 위해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항해 도중 불의의 사고로 어청도 앞 해상에서 목숨을 잃은 아펜젤러를 기리기 위해 바다 건너 군산에는 순교기념관이 세워졌고, 이곳 마량진에는 기념상이 마련된 것이다. 형태와 규모는 다를망정 한국교회의 은인을 기리는 마음은 한결같다.


선교사들의 휴식처 대천수양관

이제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를 찾아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대천으로 향해보자. 대천에는 서해안 최고의 휴양지이자, 국내 최대의 머드축제가 열리는 대천해수욕장이라는 자랑거리가 있다. 그곳에 펼쳐진 넓디넓은 모래사장과 시원한 파도를 마주보는 푸른 숲 사이로 수십채의 작은 오두막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천수양관(TBA)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바로 옛 선교사들이 휴식차. 질병치료차, 혹은 성경번역과 성경교육차 이용했던 공간들이다.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 원산과 화진포 등지에 세워졌던 선교사수양관은 전란 속에서 혹은 외국인들의 사치스러운 별장이라는 오해 속에서 오늘날 거의 다 파괴되거나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대천수양관만큼은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0대 이상의 성도들 중에는 젊은 시절, 이곳에서 벽안의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며, 마음껏 해변을 누빈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100명 안팎의 인원들이 수련회를 열 수 있는 규모의 강당이 운영되며 그 기능을 유지하는 중이다.

서양식 오두막집과 돌집, 한옥, 일본식 주택 등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대천수양관에는 그저 둘러보기만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바로 이곳이 목숨을 걸고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한 선교사들의 피난처였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옛 숨결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선교사들의 휴식처였던 대천수양관에는 다양한 모습의 건축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② 한국최초성경전래지를 기념하기 위해 마량진에 설치된 기념석.
③ 월남 이상재 선생의 뜨거운 조국사랑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전시관.
④ 문화재로 지정된 이상재 선생의 생가터. 뒤편으로 종지교회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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