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표하는 시 중 하나인 레이 드 구르몽의 ‘낙엽’은 낙엽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허무한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황혼의 숲속을 연상시키는 이 시는 구르몽이 1892년 발표한 상징시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낙엽의 속성에 인간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다. 가을 중에서도 늦가을을 대표하는 것이 낙엽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주어진 삶을 충실히 감당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감사의 몸짓이다.

지난 주 산행을 했다. 낙엽이 되기 직전 오색의 단풍이 막바지 황홀경을 연출하고 늦가을 찬바람에 떨어진 낙엽들은 온 땅을 덮고 있었다. 단풍은 가까이에서 보다 멀리서 그 물결을 봐야 제 맛이 난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까이에서 보는 단풍은 칙칙해 보였다. 인간의 황혼처럼 말라가는 모습이었다.

나뭇잎이 낙엽이 되는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없으나 식물의 줄기 속에 있는 수분의 증발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한다. 기온이 내려가고 수분의 함량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증산작용을 막고 다음해 새로운 잎이 나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식물들이 낙엽을 만드는 것은 일부분을 희생하여 전체를 보존하려는 적극적 자기보존 방법의 하나라고 한다. 이처럼 고결한 낙엽을 사람들은 고독과 허무, 이별과 회귀, 순환 등의 이미지를 부여해 왔다.

늦가을 낙엽이 된다는 것은 봄부터 가을까지 주어진 삶에 충실했다는 반증이다. 인간으로 보면 꽉 찬 인생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낙엽을 보면서 감사를 생각하는 것은 역설 같다. 그러나 결실은 햇빛과 물, 그리고 열심히 제 역할을 해 준 지체들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알곡만 보지 말고 주어진 소명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낙엽을 보면서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모양으로건 삶을 붙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한줄기 바람에 거리의 플라타너스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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