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제10회 세계칼빈학회 참관기 - ② 세계 칼빈연구 현황과 칼빈신학 과제

현대적 효용성에 대한 심화연구 필요성 제기 잇따라
‘Refo 500’ 등 국제 연구네트워크 강화 프로젝트 진행
복음사역 돕는 연구 성과 도출이 향후 칼빈주의 과제

 

제10회 세계칼빈학회에서 총신신대원 안인섭 교수가 칼빈의 설교 신학에 대해 주제발제를 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호에서 제10회 남아공 세계칼빈학회는 어떤 학회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발표 되었던 주제 발제들을 중심으로 세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세계 칼빈 연구의 현황을 알아볼 것이다. 둘째는 칼빈과 개혁 신학 연구가 어떻게 국제적인 네트워킹으로 놀랍게 발전해 가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셋째는 칼빈의 신학이 현대 목회 현장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자유대 이어릭 더 부어 교수가 주제발제를 통해 칼빈의 신학은 제네바에서 실천된 신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 칼빈 연구의 현황

2009년. 칼빈 탄생 500주년. 매우 역동적인 행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회적인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칼빈 연구를 위한 성과물은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뭔가 아쉽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세계 칼빈 학계는 어떨까? 매우 궁금하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마침 이번 제10회 남아공 세계 칼빈 학회의 주제 발제에서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이 제시되었다. 미국 칼빈대학교 헨리 미터 센터의 소장인 카린 막 교수(prof. dr. Karin Maag)의 논문인 “칼빈 2009·그 결과”가 그것이다.

지난 2009년은 칼빈이 태어난 지 500주년이지만, 동시에 진화론의 주창자인 찰스 다윈이나, 미국의 노예 해방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이 태어난 지도 200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 내에서 여러 행사들 유난히 경쟁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다채로운 칼빈 500주년 행사가 의욕적으로 진행되었다. 카린 막 교수에 의하면 그 중에서도 특히 컨퍼런스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어느 학회를 가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경우가 많았던 아쉬움이 지적되었다. 칼빈 연구자의 저변 확대가 아직도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카린 교수에 의하면 칼빈 관련 행사들 가운데 눈에 띄었던 것은 화란의 도르트레크트의 칼빈 전시회였다. 수상인 얀 발꺼넨더 (Jan Peter Balkenende)가 오픈닝을 했고, 무려 1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붐볐다고 한다.

그 외에 영어, 화란어, 독일어, 불어 그리고 라틴어 등으로 되어있는 수많은 칼빈 관련 연구 저서들과 칼빈의 유산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가지 주의할 것은, 카린 막 교수도 잘 지적하고 있듯이, 먼저 16세기의 역사적 문맥 속에서 칼빈을 깊이 있게 연구한 후, 그 칼빈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가 폭넓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칼빈과 그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구와 칼빈이 오늘날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역동적인 16세기를 살았던 칼빈의 본래의 모습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칼빈신학이 오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칼린 막 교수(오른쪽)와 안인섭 교수.
카린 막 교수는 자신의 논문의 결론에서, 칼빈 2009 행사들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무엇보다 전 세계의 많은 대중들이 칼빈에 대해서 들었고 칼빈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했다는 점을 의미 있게 보았다. 한편, 현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 칼빈이 어떤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작년의 칼빈 500 때부터 흥미 진지한 연구들이 시작되었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마지막으로 카린 교수는 칼빈 500 행사들로 인해서 칼빈 학자들과 종교개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 그리고 근대 초기의 탐구자들 간에 형성된 네트워킹을 매우 중요한 성과물로서 평가하고 있다.

‘칼빈 500’에서 ‘Refo 500’으로

카린 교수의 결론 중 맨 마지막 것은 실제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제까지의 칼빈 연구는 대체로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서 분절되어 진행되어 왔다. 따라서 칼빈 학자들이나 연구소들, 혹은 대학들 간에 서로 연대하며 상호 소통하는 연구가 매우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제적인 문맥에서는 더욱 심각했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의욕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Refo 500’이다. 20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지 500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칼빈 탄생 500주년 이후 종교개혁에 대한 고조된 관심을 반영하여, 화란의 아펜도른 종교개혁연구소(The Instiuut voor Reformatie onderzoek at Apeldoorn)를 시작으로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Refo 500)을 위한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제시된 것이다. 이 계획은 이미 유럽과 북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 그것은 아시아로 확장되었다. Refo500 아시아의 학술적인 발전을 위해서 몇 개월 전 총신대학교가 책임자(co-ordinator)로 선정되었다. 이것은 아시아의 개혁주의 연구를 총신대학교가 주도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참으로 명예롭고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은 이미 아시아 지역의 칼빈 학자들은 매 2년마다 한국과 대만과 일본을 순회하며 ‘아시아 칼빈학회’를 개최하여 칼빈 연구를 위해 노력해 왔다. 마침 돌아오는 2011년 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총신대학교에서 제11회 아시아 칼빈학회가 개최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 Refo 500을 기점으로 아시아 지역의 칼빈 연구는 총신대학교를 중심으로 세계와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에 발맞추어 개혁 신학 연구가 한층 심화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 안인섭 목사(총신대 신대원 역사신학)
칼빈의 신학으로 현대 교회를 도우라

그러면 왜 이처럼 칼빈과 개혁신학 연구가 발전되고 심화되어야 하는가? 칼빈은 현대 교회와 사회를 향해서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번 남아공 세계칼빈학회의 주제 발제의 특징만 살펴 보아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칼빈의 신학을 두 부분 즉 교회 현장과,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사회와 관계된 부분으로 각각 나누어 전체 11개 중 6개나 되는 주제 발제가 발표되었던 것이다.

먼저 칼빈과 교부와의 관계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토니 레인 교수(prof. dr. Tony Lane)가 칼빈이 보편성 (Catholicity)이란 개념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을 때, 그의 칼빈 연구는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화란 자유대학교의 이어릭 더 부어 교수(prof. dr. Erik de Boer)의 제네바의 목회와 신학에 대한 연구 발제는 거의 그 절정이다. 더 부어 교수는 칼빈에 의해서 강조되었던 신학을 제네바의 실천적인 신학(theology in practice)이라고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는다. 칼빈의 제네바 아카데미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원어 성경을 읽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교사적 목사를 양성할 것을 지향했기 때문에, 성경 해석이 신학적 핵심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 해석에 있어서 말씀이 우리를 교리(doctrine)로 인도한다고 더 부어 교수는 정리하고 있다. 결국 칼빈이 말하는 교리(doctrina)란 기독교인의 삶과 교회의 정치를 위해서 특화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발표했던 주제 발제 또한 이런 의미와 일맥 상통한다. 필자는 먼저 칼빈의 설교 신학을 정의한 후에, 그의 설교에 나타난 수직적이고 수평적인 화해의 신학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그의 설교와 주석과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목사직 이해가 어떻게 심화되었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제시했던 것이다.

교회의 목회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칼빈의 신학이 조명되었다. 첫날 주제 발제를 했던 남아공의 브리즈 교수(prof. dr. Dolf Britz)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초판(1536년), 2판(1539년), 최종판(1559년), 그리고 성경 주석들과 설교에 나타난 칼빈의 이사야 61장 1-3절의 해석이 남아공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했다. 칼빈의 윤리와 정치 사상을 발표했던 독일 뮌스터의 바인트커 교수(prof. dr. M. Beintker)나, 칼빈은 노예 제도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연구했던 프랑스 출신의 카이아얀 선교사(Ds. Eric Kayayan)도 이와 같은 문맥에서 칼빈의 신학을 사회적 문맥에서 연구한 것이었다.

이제 결론적으로 정리해 보자. 종교개혁 직전의 15~16세기 중세 교회와 사회는 더 이상 견디어 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통이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교회와 사회가 관료제도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러나 이 전통은 당시 교회와 성도들의 영적인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칼빈의 신학은 이와 같은 시대적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의미에서 칼빈의 신학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에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도 매우 소중한 통찰을 제공해 줄 것이기 때문에, 칼빈 연구는 더더욱 강조되고 심화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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