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요양시설 ‘늘 푸른 동산’ 운영, 지역복음화 원동력 삼아

▲ 김종순 목사와 늘푸른동산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는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이천 늘푸른교회(김종순 목사)는 농촌 복지목회의 첫 장을 연 케이스다. 24년 전 이 곳에 교회를 개척한 김종순 목사는 ‘늘 푸른 동산’이라는 요양시설을 만들고 노인 30여 명을 섬기며 농촌목회에 헌신하고 있다. 그 결과 작은 마을임에도 150여 명의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로 타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다소 늦은 나이인 40세에 처음 목회를 시작한 김 목사는 교회가 없는 곳에 개척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아무 연고도 없던 이천 율면에 교회를 세웠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지만 싸늘한 시선에 멱살부터 잡히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농사 일이 힘에 부쳐 자주 아픈 노인들에게 죽을 싸다 간호하면서 복지목회가 시작됐다.

“가정집이 띄엄띄엄 있으니까 몇 가정만 방문해도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아예 교회 방 한 칸에 노인들을 모셔놓고 돕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죠. 꼭 노인 복지목회를 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 사역하는 곳에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하다 보니 노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 겁니다.”

처음에 노인 두 명을 모시고 간호했던 것이 이제는 전문요양시설이 됐다. 교인 13명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직원이 되어 노인들을 섬기고 있다. 교회는 예배당과 요양시설, 사택, 직원 집과 밭까지 있는 하나의 마을이 됐다.

김종순 목사는 목회자의 철저한 희생과 헌신을 농어촌교회 부흥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농어촌교회가 어려운 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물론 있지만 목회자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김 목사는 “서울의 좋은 교회에서 담임목사 제의가 들어왔지만 내가 아니면 이곳을 누가 지킬까 하는 염려에 떠나지 못했다”며 “목회자가 애정을 가지고 지혜롭게 목회한다면 농어촌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도시교회에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자립할 수 있는 방법도 김종순 목사의 지혜에서 나왔다. 교회에서 인삼을 재배해 교회재정을 충당한 것이다. 텃밭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물들도 요양시설에 식재료로 들어가 돈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하우가 됐다.

시골이다 보니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들도 흘러들어왔다.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핀 것도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준 계기가 됐다. 그들은 늘푸른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안수집사까지 되는 등 변화된 삶으로 성도들을 감동시켰다. 결혼식과 장례식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도 늘푸른교회만의 부흥 비결이다.

뿐만 아니라 김종순 목사는 목사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성도들과 격의 없이 지내다보면 목회자로서의 경외감을 잃게 될 것을 경계한 것이다. 김 목사는 “목회자로 구별되어 성도들에게 거룩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목회를 할 때 중요한 한 가지”이라고 강조했다.

김종순 목사의 이런 헌신은 결국 성도들의 회심과 성장으로 돌아왔다. 평생의 동역자이던 사모를 6개월 전 간암으로 잃은 김 목사는 목회에 의욕을 잃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다. 그 때 담임목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기도하고 교회를 섬긴 성도들이 있었기에 김 목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는 그 때 성도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느끼고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농촌목회자의 대부 격인 그는 후배 농촌목회자들에게 ‘죽도록 충성’할 것을 주문한다. 주님이 보상해주실 것을 믿고 자기희생을 아끼지 말아야하는데 본인이 살 길을 마련해 놓고 그 다음에 목회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론 농촌교회 부흥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김 목사는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해야 더 보람도 있고 인정받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저는 부자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성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농촌교회도 부흥할 수 있습니다. 후배 목회자들도 노력과 희망을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