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제스트/ 안인섭 교수 〈칼빈과 어거스틴>

권위에 대한 외경심이 많이 사라진 오늘날 기독교인만큼은 국가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고 친화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인들은 왜 이런 친 국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을까?

총신대신대원 안인섭 교수가 최근 펴낸 〈칼빈과 어거스틴:교회를 위한 신학〉(그리심)은 어거스틴과 칼빈이 개신교인의 국가관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칼빈과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을 비교 연구한 국내 최초의 단행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두 사람의 국가관을 비교했고, 그들이 왜 그러한 국가관을 갖게 됐는지를 당시 사회상황을 정리함으로 고찰했다.

AD 4~5세기를 살았던 어거스틴과 16세기 사람이었던 칼빈은 같은 개혁신학적 맥락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인지 국가관에서 많은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양 신학자는 국가와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공적인 것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어거스틴과 칼빈은 국가의 정당한 기능과 합법적인 정치 책임자를 반대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허무는 것으로 여겨 강력히 경계했다.

둘째 국가의 기능을 지상에서 절대적인 평화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현실사회 가운데 (최대한) 평화와 질서를 제공해 주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정의했다. 이는 그리스의 고전적인 국가관이 절대적 평화와 정의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고 본 것과 비교된다. 셋째 두 신학자들은 다른 종파에 대한 강압적인 개종을 주장하지 않았다.

어거스틴 당시 로마는 가톨릭이 아닌 다른 종파에 대해 법적인 처벌을 가할 것을 국가법으로 밝혔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강제로 개종해서는 안 되며 목회적인 의미로 교육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 시대도 로마 가톨릭을 신봉하는 국가들이 개신교도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러나 칼빈 역시 국가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바른 교리를 수호해야 한다는 원칙만 강조했다.

넷째 그러나 어거스틴과 칼빈은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고 죄인을 교화하는 차원에서 권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중요한 것은 이 권징이 국가에 의해서 시행되는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교회의 목회적인 활동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 사람은 교회는 국가와 사회에 영향을 주돼 (어떤 집단적인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설교를 통해 (성도) 개개인의 인격적 변화를 끼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어거스틴과 칼빈의 국가관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국가의 종교적 기능을 강조하는 문제와 저항권의 문제다. 첫째 칼빈은 어거스틴보다 상대적으로 국가의 종교적 역할을 강화했다.

둘째 어거스틴과 칼빈이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국가의 신적 기원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존경을 강조했다고 해서, 불의한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특히 칼빈의 경우, 그의 후기에 가서는 정의롭지 못한 정부보다는 그 불의한 정부보다 더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 책 후반에 가서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면서 통일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칼빈의 사상, 기독교적 관점에서 정부에 바라는 통일론 등도 기술되어 있다. 한편 이 책은 어거스틴의 저작 원문을 토대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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