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좋은 배우자인가? 친절한 사람이다. 고전13:4을 보면,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다”고 한다. 영어 성경에는 "Love is kind"로 나온다. 사랑은 친절한 것이다. 성도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 23:11) 여기서 섬김이란 친절과 상냥과 헌신이 포함된 개념이다.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는데 너무 익숙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똑똑하다, 세다, 그런데 너무 차다. 네티즌들을 보라. 자기 권리에는 쉽게 분노가 끓어 오른다. 그런데 별로 친절하지 않다. 따뜻함이 없다. 그래서 인간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창24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의 ‘신부 구하기 작전’이 벌어진다. 엘리에셀이 리브가를 만나서 물을 달라고 한다. 리브가는 친절하게 물을 준다. 그리고 “낙타에게도 주겠습니다.”라 하며 10마리의 낙타에게 물을 준다. 낙타는 물없이도 오랜 시간 사막을 다니다. 그러니 얼마나 물탱크가 크겠는가? 리브가는 “배불리 마시우게 하리라”고 하면서 충분히 물을 마시게 한다. 친절함 그 자체이다. 이런 친절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친절한 사람이 착한 사람, 성령의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다.

엘리에셀은 이삭의 아내의 징표를 하나님께 구한다. 그 징표의 내용이 친절이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창 24:14) 친절함을 보고, 그 사람이 이삭의 아내인줄 알겠습니다라는 뜻이다. 친절하면 쓰임받는다. 일본에서 길을 물은 적이 있다. 이세탄 백화점에서 마루이 백화점까지 친히 와서 가르쳐 주었다. 잊을 수 없었다. 친절은 잊지 못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에서 소풍을 가서 벌에 물려서 손이 퉁퉁 부었다. 당시 20대의 여자 선생님이 입으로 불어주면서 상처를 달래 주었다. 지금도 그 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 다시 벌에 물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였다. 친절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 일러스트 = 강인춘
왜 친절이 중요한가? 결혼도 일종의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깨지기 쉬운 것이다. 물건 보낼 때, 보내는 짐 겉면에 “깨지기 쉬움”(fragile)이라고 쓴다. 인간관계도 그만큼 깨지기 쉽다. 무례한 사람은 반드시 인간관계가 깨지게 되어 있다. 제일 보기 민망한 것은 남편이 아내를 박대하는 것이다. 소리지르고, 막 대하고. 무례한 것은 보기에 고통스럽다. 더 보기 민망한 것은 아내가 남편을 박대하는 것이다. ‘밥 벌이도 못하는 주제에, 밥은 매번 챙겨먹고...’ 서로 존중해 주는 것은 보기 좋다. 친한 사이일수록 부드럽고, 친절하게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연애할 때는 친절하다. 이렇게 생각하라. 구애할 때, 그때가 평생 제일 친절할 때이다. 그리고 남에게 하는 것을 보라. 식당에서 딱딱하게 굴면, ‘터프하다. 남자답다’가 아니다. 그게 결혼 이후에 당신에게 할 언어와 행동이다.

친절한 사람은 소중히 품을 줄 안다. 친절은 좋은 것을 머무르게 한다. 사람은 불편하면 떠난다. 친절해야 머무른다. 친절한 사람 옆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 좋은 것이 머무른다. 뭐든지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다윗은 많은 장점이 있지만,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좋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을 몰랐다. 삼상25장을 보면, 나발을 만난다. 나발은 무례하고, 친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을 위기를 맞았다. 그때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 나서서 분위기를 수습한다. 아비가일은 친절하고, 자기를 낮추고, 지혜를 말한다. 성경에 나온 여자의 말 중에 제일 긴 구절이 인용된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용기, 총명함, 친절한 자세에 감명받는다. 머리 속에서 그녀를 지울 수가 없었다. 나발이 죽자,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는다. 여기까지는 멋지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그 이후 아비가일은 더 이상 다윗의 삶에 등장하지 않는다. 아비가일 대신에 계속 딴 여자가 나온다. 밧세바가 나오고, 다른 여자들이 나온다. 다윗은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법, 말씀을 생각하는 법, 헌신에 감탄하는 법을 알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인을 계속 소중히 여기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다윗은 여성으로 인한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친절해야 소중한 것이 머무른다. 친절해야 소중한 것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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