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백수해안도로…크고 작은 섬들의 군무에 흠뻑 빠지다

〈마파도〉 영화 촬영지를 찾아나서는 길은 역시 멀고 험했다. 장림(長霖)의 계절도 아닌데 100mm가 넘는 장대비는 줄기차게 따라 다녔다. 친구하자고 초청한 적도 없는 8월 말의 후덥지근한 불청객으로 인해 여행의 묘미는 솔직히 반감되었다. 하지만 염산에서 법성으로 가는 백수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반감이 호감으로 확 바뀌었다.

백수해안도로

2005년 한국도로교통협회가 전국 모든 도로를 대상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을 공모하여 당당히 아홉 번째로 선정된 전남 영광군 백수해안도로는 최근 이곳 동백마을과 낙월면 소각이도에서 영화 〈마파도〉를 촬영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갑자기 각광을 받고 있다. 〈마파도〉 촬영장에 가려면 해안도로 중간의 동백마을과 백암전망대 시멘트 길을 이용해야 한다.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매우 경사져 조심해서 들어가야만 세트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답동마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진주 정씨 가문의 열부들이 왜군의 수모를 피하기 위해 바다에 투신하여 정절을 지켰다는 ‘정유재란 열부순절비’를 찾아보는 것이다. 일명 팔녀각이라 불리며 전남 도지정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해안도로의 백미로 불리는 벚꽃과 해당화 꽃길은 철이 지나 마주칠 수 없었지만 절벽과 바닷물이 만나는 해안선 너머의 해무(海霧)는 내내 동행하여 신비속에 여행을 즐겼다. 백수해안도로에 몸을 맡기고 바다로 시선을 돌리자 올망졸망한 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노랑부리백로와 괭이갈매기, 저어새의 번식지로 알려진 칠산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관심을 끌었지만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아쉬웠다. 참고로 칠산도는 일곱 개의 섬들을 묶어 이렇게 부르는데 우리나라 최대 조기어장이다. 해식애와 절리층이 발달하여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안마도도 매우 볼 만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백수도로의 으뜸은 고두섬의 낙조다. 그러나 철 지난 장맛비 때문에 낙조는 다음 편으로 미뤄야 했다.

백암 전망대·가마미 해수욕장

백암전망대에 올라섰다. 해안길을 따라 굽이굽이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에 혼쭐이 났는지 파도도 치지 않고 잠잠히 숨을 죽이고 있고, 크고 작은 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무 뒤편에 몸을 숨겼다. 다시 5분 정도 달려 ‘전망좋은 곳’으로 소문이 자자한 칠산정 앞에서 한동안 사색을 취하다가 〈건강365계단〉을 따라 무작정 바닷가로 내려갔다. 물이 빠져 모두 속살을 드러내놓고 맘껏 일광욕을 하고 있는 갯바위의 모습을 나무꾼처럼 몰래 훔쳐보며 이 모양 저 모양을 골고루 촬영했다.

백수해안도로는 2003년 5월에 완공되어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벌써부터 강원도 삼척 새천년해안도로, 경북 영덕 강축해안도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손색이 없다고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방파제를 따라 바다 낚시를 즐기고 있는 강태공을 넋 잃은 듯 쳐다보다가 호남의 3대 피서지로 불리는 가마미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병풍처럼 빼곡히 자리한 솔숲사이의 정자에서 한숨 잤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푸념을 하며 1km가 넘는 백사장을 하릴없이 걸었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 또한 동해 일출과는 사뭇 다른 장관을 연출한다는 가게 주인의 말에 괜한 날씨만 원망하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길을 식욕으로 돋우겠다고 겨우 달래 법성포 영광굴비 식당으로 향했다.

기독교인순교지

염산면 기독교인순교지 기념탑 앞에 섰다.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끓고 먼저 기도를 올렸다. 6·25당시 영광군 염산면 교인들은 이곳 포구에서 배수갑문을 이용한 북한군에 의해 큰 돌에 묶여 수장당했다. 순교를 당한 사람만 이 지역에서 무려 194명에 이른다. 지척에 있는 염산교회 77명, 야월교회 교인 65명도 이곳에서 함께 순교했다. 염산교회내 있는 영광군 순교역사연구소를 둘러보고 아픈 상채기를 어루만지며 굴비와 함께 영광에서 명물로 손꼽히는 천일염전으로 갔다.

그러나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려 염전은 ‘개점휴업’ 상태였다. 바둑판처럼 반듯한 천일염전 터만 반짝반짝 빛났다. 영광의 천일소금은 전국 생산량의 10% 정도인 3만 2000톤 가량이 매년 생산된다.

“아따, 뭐시기 9월 4~5일경 오시오. 그때는 뽀얀 소금을 볼 수 있을 텡게.”

염전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있던 어부의 말을 뒤로 흘리며 또다시 떨어지지 않는 서운한 발길을 귀경하기 위해 영광 인터체인지로 돌렸다.

가볼만한 음식점

·일번지 : 영광굴비로 유명한 법성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로지 굴비 한정식만 취급한다. 20~30가지가 넘는 정갈한 반찬에 누리끼리한 굴비뿐만 아니라 꽃게와 대하 등의 맛도 독특하다. (031)356-2268.

·다랑가지식당 : 국산 꽃게만을 고집하는 토속 음식점으로 천연게장 소스를 신선한 꽃게에 배합하여 전통 간장게장을 생산한다. 갈치찜 병어찜 꽃게탕이 일품. (061)356-5588.

·운암회관 : 한우 암소고기 전문집으로 소고기는 물론 돼지 삼겹살과 목살의 맛이 담백하다. 가격이 다소 저렴하다. (061)351-0824.

·코리아가든 : 신선하고 부드러운 육질의 쇠고기가 정평이 나 있으며, 후식으로 제공하는 꽃게장이 오히려 별미라는 평가다. (061)353-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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