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주택복권〉에서 〈예스 오 노〉까지 ‘머니게임’은 날마다 계속된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매체나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70~80년대에 가장 인기 좋았던 TV프로그램은 무엇이었을까. 주부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던 드라마, 아이들을 브라운관 앞에 붙잡아놓았던 만화영화, 남성들을 열광케 하던 스포츠중계. 취향이나 연령층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1969년 〈쇼 주택복권〉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주택복권 추첨 방송이다. ‘준비하시고~ 쏘세요!’라는 사회자의 외침이 지금까지도 유행어로 남아있을 만큼 매주 한 차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며, 시선을 잡아끌었던 인기물이었다.

프로그램에 나와 힘껏 활시위를 당기는 출연자들이나, 손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들고 당첨번호를 맞춰보는 시청자들이나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돈이다. 평생 한 번 만져볼까 말까한 거액이 내 수중에 들어온다는 것은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일당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엄청난 판타지가 아닐 수 없었다.

순위에 따라 당첨번호를 결정하는 과정 앞뒤로 인기가수의 노래나 코미디까지 즐길 수 있었던 당시와 달리, 요즘의 로또 추첨방송은 다른 포맷의 동원 없이 순식간에 끝나는 데다, 화살이 빗나가기라도 하면 TV 안과 밖에서 동시에 장탄식을 이끌어내던 주택복권 추첨방송 시대와 같은 재미가 덜해 밋밋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소위 ‘머니게임’이 가지는 흡인력 때문이다.

요즘에는 또 다른 형태의 머니게임들이 TV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비록 복권 추첨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된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평범한 서민에게 일확천금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동일한 판타지를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케이블TV 채널 중 하나인 티비앤(tvN)의 〈예스 오어 노〉이다. 미국 인기방송의 틀을 고스란히 따온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단돈 10원에서 최고 1억까지 각기 다른 금액이 들어있는 26개의 돈 가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차례대로 다른 가방을 열어가면서 자기 가방 속에 들어있는 금액을 추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거액을 손에 쥘 수 있는 방법이 오로지 행운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다는 점은 복권추첨 방송과 다를 바 없지만, 진행 도중 도전자가 주어진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곧바로 다음 대기자에게 기회가 넘어간다든지, 마지막 순간에 방송사 사장이 도전자에게 협상금을 제시한다든지 하는 색다른 재미가 가미된다.

그래서 각각 5만원과 1억원이 담긴 두 개의 가방 중에서 하나를 골라내는 마지막 순간의 짜릿함이나, 만만치 않은 협상금과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행운의 도전기회에서 선택을 놓고 갈등하는 도전자의 표정은 지켜보는 이들까지 몰입시킬 만큼 연출력의 효과를 잘 발휘한다.

그런데 방송사측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세우는 것은 소위 ‘휴머니즘’이다. 절박한 사정을 가진 일반인들을 출연시켜 기회를 주고, 그들이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인생지원금’을 보태준다는 취지를 내세우는 것이다. 며칠 전 이 프로그램에서 1억원을 거머쥔 행운의 주인공이 탄생하고, 교회 전도사이자 연극 연출자라는 그 주인공이 동료 아버지의 수술비로 1천만 원을 쾌척하는 광경은 언뜻 보면 휴머니즘에 다가서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매주 한 시간 동안 시청자들을 꼼짝 없이 붙들어놓는 힘이 결코 휴머니즘은 아니라는 게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것은 ‘1억’이라는,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너무 먼 거리에 놓인 꿈이자 갈망이다. 그래서 가방을 열 때마다 도전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결 같이 기도하듯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역술인이 제시하는 행운의 숫자에 귀 기울인다. 이 프로그램에서 돈은 하나의 신앙이자, 천국의 열쇠이다.

감동과 열정, 성공과 사랑이라는 가치들이 ‘돈’이라는 개념으로 치환되는 광경은 더 이상 TV에서 낯선 게 아니다.

어린 국악지망생의 심금을 울리는 소망이 500만원의 포상금으로 보상받고(SBS TV 〈놀라운 도전 스타킹〉), 단 한 마디의 힌트와 대답에 1천만 원과 1만원 사이의 ‘장학금’이 오락가락하며(KBS TV 〈스타 골든벨〉), 자신만의 추억과 애정이 담긴 물건들을 굳이 현금성 가치로 계산하는(MBC TV 〈경제야 놀자〉) 모습들은 한편 재미있지만, 뒤돌아서면 씁쓸하다.

왜 꼭 ‘돈’이어야만 할까. 직설적인 욕망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고 주목받는 세태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던 〈러브하우스〉나 산간벽지의 아이들에게 기적의 도서관을 선물해주던 〈느낌표〉가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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