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감동" 순수한 책읽기 재미찾은 어른 급격히 늘어

책 속에 쏘옥 들어갈 정도로 머리를 박고 독서에 열중했던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다. 그 세계에서 잠시라도 빠져나오기 싫어 어머니의 잔소리도 감내하면서 식탁에서도 책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 쉬는 시간 골라든 학급문고책에 정신이 팔려 수업 시작 종소리도 못 들은 채 그 다음 수업 시간까지 책읽기에 열중했던 기억,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책장을 끝까지 넘기던 기억. 단지 책 읽는 것 자체가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던 그런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 일러스트=강인춘
그러나 그렇게 재미있던 책읽기가 언제부터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자기계발을 위해, 다들 읽은 베스트셀러라서, 즐거워서가 아니라 무엇인가 목적을 위해 책읽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어렸을 때 경험했던 순수한 독서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다시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화는 짧고 이해하지 쉽고 부담이 없다. 그러나 동화가 주는 감동은 단순하지만 매우 강렬하다. 책장을 다 넘기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는 책도 많다. 그러나 그 책에서 받은 감동은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대형서점에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코너가 새로 생겼을 정도로 이제 동화는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화를 사랑하고, 동화를 돌려가며 읽으며, 동화를 연구하는 모임이 각 지역마다 생길 정도로 이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다.

[동화읽는어른] 송탄지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귀영 씨는 여섯 살 난 큰아들에게 권정생의 <강아지똥>을 읽어주면서부터 동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는 그때 강아지똥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꿈뻑이고 있었는데 정작 제가 눈물범벅이 되었지요. 그 때부터 권정생의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한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가 싫을 정도로 즐거워요.}
이들이 동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주로 어린 자녀나 조카, 손자손녀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면서다. 내 아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 동화가 주는 독특한 즐거움과 감동에 흠뻑 빠져버린 셈이다.

평택 기쁜어린이도서관 최해숙 관장도 손자에게 읽을 책을 고르기 위해 동화를 읽다가 현재 10년 넘게 어린이책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화를 읽으면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아니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돼요. 동화를 읽는 순간에는 그 세계에서 살아 숨쉴 수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행복해요.}

최 관장은 옛이야기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평생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라고 꼽았다. 떡을 빼앗고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 곧 두려움이라는 개념을 오누이가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 때문에 이웃이 호랑이의 먹이가 되고 코너에 몰린 오누이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내가 어느 때 누구에겐가 호랑이로 군림하지는 않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곰곰이 곱씹어본다.

[동화읽는모임]의 한 회원은 다시 동화를 읽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인 책을 읽으면서도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어린이책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한 개, 두 개, 보이던 것이 세 개…, 네 개…, 앞면, 뒷면만 보이던 것이 옆면, 모서리까지도 보이려고 합니다.}

[어떤 목적을 위한] 책읽기에 지쳐 있는가? [독서]라는 단어에 심적 부담감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지금, 서점에 가서 아기자기하고 포근한 일러스트로 가득 찬 어린이책을 한 권 꺼내서 책장을 펼쳐보자. 어린이책은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가져다줄 것이다. 어릴 때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더 크고 강력한 감동과 깨달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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