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소리 정겨운 죽향의 고장 ... 가로수 걸으며 세상 시름 잊어

 

할 수 만 있다면 나도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되어 1970년 말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조선시대 중기로 거슬러 올라가 대숲소리를 벗삼아 한적하게 노닐고 싶었다. 죽향(竹鄕)의 고장 담양에서 느낀 첫 인상은 그런 쉼이었다.

{마을이 있는 곳에 대숲이 있고, 대숲이 있는 곳에 마을이 있다}는 담양은 쭉쭉 뻗는 기상과 곧은 처신을 강조하는 선비의 모습마냥 곱게 전라남도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죽세공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별로 살림에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담양사람들은 지금도 대숲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낯선 손님에 대한 예의는 분명히 아닌데 이상하게 국지성 소나기가 두어 차례 쓸고 지나갔다. 그렇다고 비를 탓하랴. 씩씩하고 당당하게 소쇄원부터 찾았다. 광주발 화순행 887 지방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가고나면 반드시 실망한다]는 친구의 조언(?)을 뒤로하고 대숲 길을 따라 갔다. 물이 없어 계곡은 삐쩍 말라 있었고, 당대 문사들이 담론을 펼쳤던 광풍각은 향토사학자의 강의를 듣느라 아주머니 학동(學童0들로 만원이었다. 조선시대 시와 소리를 즐기던 곳, 기묘사화 당시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있다가 출세를 저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정원을 만들고 유유자적 했다던 양산보의 한량을 한참동안 느꼈다. 곧 개봉할 송혜교 주연의 영화 [황진이]를 소쇄원에서 촬영했는데 어떤 배경을 영상으로 담았는 지 퍽 궁금하다. 물론 영화 [황진이]는 꼭 볼 것이다.

▲ 식영정 앞 <서하당> 정자.

가사문학관에 들러 눈도장을 찍고, 바로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1번지]이자, 가사문학의 산실인 광주호의 산허리를 따라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었다는 식영정으로 올라갔다. 주변경치가 아름다워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이곳은 말 그대로 시야가 확 트이고 솔숲 너머로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송강은 조정의 당파싸움을 피해 가사문학의 꽃을 재배했다. 이곳엔 아주머니가 아니라 대학생으로 보이는 [미래의] 사학자들이 열심히 안내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산림청이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선정한 <메타세콰이어> 길. 산책길로 최고란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마침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다. 서울에서 [낙향]할 때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고대하던 곳이다.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김희선이 아빠와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매혹에 취한 그 거리다. 역시 좋다. 동행했던 친구는 두 팔을 벌려 큰대 자로 환호했고, 또다른 동행자는 렌트해 간 오픈카에서 고개를 내밀고 불량소년마냥 괴성을 질러댔다. 우리는 그렇게 한 바퀴, 두 바퀴,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초록의 동화길 메타세콰이어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노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담양관광호텔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이튿날 득달같이 일어났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금성산성을 찾았으나 출입금지 푯말이 위병처럼 서서 가로 막았다. 다시 메타세콰이어로 갔다. 새벽 미명에 맛보는 기분은 어제와 또 달랐다.

아침 6시 20분, 대나무골테마공원. 이른 아침 탓이라 문이 꼭 잠겨 있었다. 3시간이 넘는 개방시간을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전화로 안내자를 불러내 통사정을 하고 당당하게 입장했다. {지금 죽순이 올라오는 시기니까 절대로 밟아서는 안됩니다.} 대밭 속은 말 그대로 우후죽순(雨後竹筍)이다. 한석규의 부드러운 광고 음성이 떠올랐다.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그 광고 촬영지도 이곳이다. 뿐 만 아니라 <흑수선>, <청풍명월>의 배경도 여기다. 역시 좋다. 우리 3명은 대나무골테마공원을 전세내어 맘껏 향유했다. 산책로를 따라 1시간 가량을 대마무만 음미하며 지냈다.

조반을 간단하게 먹고 죽녹원으로 갔다. 돌계단을 거침없이 오르자 대바람이 시원스럽게 마중나왔다. 대나무골을 보고 온 탓인지 큰 감흥은 일지 않았지만 죽녹원은 왕죽과 조릿대들이 골고루 자리하고 있어 죽림욕을 하기엔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수대통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영화 <알포인트>촬영지에서 왕대를 부여잡고 3명이 단체사진을 찍었다. 끝으로 담양의 의미를 담는다는 뜻이었다. 관방제림과 대나무박물관을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신명난 1박 2일의 [꿈같은] 초록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  신신우 장로(광주동명교회)가 추천하는 맛집

    숯불갈비 승일식당 담양읍 객사리 (061) 382-9011
    한정식 맛선 담양군 금성면 (061) 383-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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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갈비 덕인갈비 담양군 백동면 (061) 381-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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