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의 아버지라 불리는 주은래 총리의 좌우명이 구동존이(求同存異)였다고 한다. 뜻인즉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은 구하고 다른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가 신명을 바쳐 봉사한 나라에는 공산당밖에 없었으니 ‘존이’는 공산당을 넘어서까지 적용된 것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끼리도 ‘같은 입장’(同)이 있고 ‘다른 입장’(異)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소위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얘기가 있는 걸 보면 그 무시무시한 죽의 장막 안에서도 입장의 차이가 엄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념(紅)보다 산업(專)을 중시한 등소평이 모택동 주석의 제안에 기립반대의사를 표하자 모가 “등소평 동지는 일어서나 앉으나 같으니 만장일치통과로 하겠다”고 코믹하게 말하고 지나치려 하자 등소평이 손살같이 탁자 위로 올라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서서 반대한다고 했으니 그 용기는 과연 부도옹(不倒翁)의 별명을 얻고도 남음이 있다.
등소평은 주은래에게 구동의 대상이었고 모택동은 존이의 대상이었을까. 모택동의 괴이한 행적과 실정에도 불구하고 주군처럼 깍듯이 보좌하고 등소평 같은 나라의 기둥감들을 보호·인도해주었던 주은래를 보신의 명수라고 비웃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 무엇일까. 주는 생각하기를 모에게서는 중국통일의 공을 찾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던 것 같다. 그의 그런 유려함과 혜안이 피의 숙청이 다반사였던 살얼음판에서 끝까지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게 했고 사후에도 공들인 후배들을 통해 백성의 안위 보장과 나라의 발전이 계속 도모되게 했다.
같은 공산주의자면서도 북한 당국자들은 왜 그리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짓만 골라 할까. 최소한 구동존이의 좌우명이라도 익혔으면 좋으련만. 추위에 떨고 있을 북의 동포가 안쓰럽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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