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목양 단상(斷想)

이윤동 목사(목포남향교회)

은주는 얼마 전에 엄마가 가출했다. 병든 아빠가 당황해서 목회자인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고작 이렇게 말해 줄 수 밖에 없었다. "곧 돌아오시겠죠. 아이들이 있잖아요!."
'자식버릴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보니 결과는 매우 비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돌아올 것'이라고 보았던 나의 순진한 예상은 여지없이 틀리고 말았다. 반년이 지난 지금 중3 은주는 산업체 안에 있는 학교로 간단다. '내가 이 아이를 가르치면 안될까?' 백방으로 생각해 보았으나 내게는 이미 딸이 넷이나 있다. 또 우리 교회 아래층에는 이미 교회가 섬기고 거두어야 할 청년, 학생들이 여럿이 산다.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 줄 힘이 없는 나는 어떡하면 좋은가!
얼마 전 택배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수 천만원의 빚을지고만 한 가족이 있다. 이 젊은 부부와 두 아이는 손해를 회복하려고 열심히 살며 열심히 기도했다. 거기에 형님의 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어 아파트를 날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큰 녀석이 감기로 시름시름 앓더니 며칠 전 먼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이 강도 만난 가족을 부축하느라 일주일 새 몸무게가 2kg이나 줄었다. 지금 이 부부는 억장이 무너진 가슴을 쓸어안고 자기 집이 무서워서 가까운 집사님 집에 기거하고 있다. 오늘 아침도 무얼 기도하는지 새벽에 나와 소리없이 앉아 있다. 작은 녀석 보듬고서 어렵게 이겨나가는 이들을 보면서 약하디 약한 내가 어찌 그리 작아 보이는지!
하얀 눈이 내리고 환희에 찬 루돌프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성탄송이 거리를 충만하게 채우는 이즈음이다. 이 사람들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하늘을 우러를 수 밖에 없다. 추위와 굶주림 가운데 한숨짓는 이웃을 찾아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곳에 그들과 함께 그냥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묵상하면서 조용하게 연말을 보내고 싶다. 내년에는 고통없는 날들을 주십시오 하면서…. 마음 따뜻하고 주머니 든든하여 어려운 이웃을 마음껏 돕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이들을 부축할 선한 이웃들로 가득한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돕겠다고 나서는 교회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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