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이라는 자리

기독신문사의 사장과 주필은 봉사직이어서 급료가 없다. 총회본부의 총무나 총신대 총장은 급료를 받는 상근직이기 때문에 교회를 담임할 수 없으나 주필은 그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 사장은 목사보다 장로가 더 많이 역임했다. 신문사도 영업주체이기 때문에 사업을 아는 장로가 맡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통합측 기관지(기독공보)는 목사가 사장이다. 그것도 공채 사장 말이다.
사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주필은 편집에 전념한다. 그래서 주필은 반드시 목사여야 한다. 신학과 목회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필의 신학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에 일치해야 한다. 신칼빈주의의 대가인 아브라함 카이퍼가 불란서 혁명과 같은 인본주의적 피의 혁명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결성된 반혁명당 기관지 편집책임자로 수십 년간 재직하면서 개혁신앙 연구·보급에 진력한 것을 볼 때 주필의 신학적 전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신학은 교단존립의 근간이다.
사장과 주필을 돕는 총무국, 편집국, 출판국 등 실무 부서가 있다. 각 국에는 국장이 있고 그 아래 부장 과장 주임이 있다. 모두 상근직원들로서 급료를 받는다. 그리고 일반 직장처럼 정년제가 적용된다. 우리 신문은 직원수로나 발행 부수로 볼 때 한국 기독교계 신문 중 가장 큰 규모다.
주필로 봉사한지 2년이 되니 신문과 교단 돌아가는 걸 조금 알 것 같다. 전임 주필의 14년여에 걸친 눈부신 활동에 비하면 나의 존재는 아직 미미하다. 위인이 불민하고 연한 또한 일천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본직을 정치활동의 축으로 활용하기보다 개혁신앙 선양의 소명으로 알고 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주필이기에 교단 내 크고 작은 집회에 강사로 여러 차례 초청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개혁주의를 소리높이 외쳤다. 졸업 앨범에 “역사적 칼빈주의 사수!”라고 쓰고 7년 총신을 나온 사람답게.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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