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잇닿은 내 영혼의 언어 뇌성마비 장애, 왼발로 시 써… “하나님 증거 도구되고 파”

그는 힘겹게,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말들은 쉽사리 그의 입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그의 온 몸을 휘젓고 다닌 끝에야 가까스로 그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단절되며, 어렵게 새어나오는 그의 말들은 그래서 늘 안타까움을 동반했다. 그의 힘겨움은 마주한 상대방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로서도 속수무책,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뇌성마비, 태어날 때부터 그의 육체를 지배해온 이 ‘장벽’은 어쩌면 그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그가 구어(口語) 대신 문어(文語)를 택한 것은 그래서 좀더 ‘현실적’인 대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체장애 1급인 그가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으로서의 ‘글’은 ‘말’의 고단함과 힘겨움을 얼마간은 완화시켜주는 대안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 대안적 커뮤니케이션을 왼발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발가락 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앉은뱅이 꽃의 노래

이흥렬(50·집사·대구밀알선교교회·한국장애인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

경남 고성 출생인 그는 태어난 지 한달도 안돼 심한 충격으로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온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그는 14세가 되어서야 독학으로 글을 익히기 시작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한 근육조직, 왼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27세가 넘어 불현듯 ‘시’라는 새로운 세계로 스며들었다. 자유재활원이란 장애인시설에서 “시를 써야한다”는 강렬한 울림을 들었던 것이다.

육체적인 장애 앞에서 끝없는 절망의 나락을 경험했던 그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늘 모호했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그의 육체는 그에게는 처절한 감옥이었고, 늘 그를 절망의 벼랑으로 밀어가는 한계상황이었다.



아파도 앓아 눕지 못하는/ 앉은 뱅이 꽃// 마음을 다해 태워도/ 신열은 향기로만 남는/ 뿌리 깊은 앉은 뱅이 꽃// 갈대밭 세상에서/숨어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키 작은 내 모양. ­ 시 ‘앉은 뱅이 꽃’ 전문.



그런 그가 삶의 지표를 찾게 된 것은 신앙. 수도산 기도원에서의 경험과 장애인시설에 들어가게 되면서 다시 찾은 믿음은 그가 자신의 육체를 넘어 진정한 희망을 내다볼 수 있는 ‘영혼의 창’이 되어주었다.



주님!/ 그 긴 기도소리에/ 내 영혼의 눈이 이제야/ 밝히신 빛을 받아 부시시 뜹니다// 아침 햇살처럼 화사한/ 당신의 영광은 너무나 눈부십니다.// 당신은 가을의 풍요로움 속에서/ 때론 쓸쓸함을 남기지마는/ 나의 가슴 깊은 곳의 노래입니다./ 십자가 지신 목메인 당신의 숭고한 노래// 주의 모습은 사 계절중의 가장 아름다운 꽃/ 세상 어느 향기보다/ 신비한 생명의 향기입니다.// 나도 당신을 담게 하소서./ 그 쓰라린 십자가를 지셨으니/ 온 세상을 영광되게 하소서. ­ 시 ‘주님’ 전문.



▲대학을 가고 싶어요

그에게 삶은 하나의 전투이다. 세수하고 이닦고 밥먹는 일상사가 그에게는 모두 전쟁인 것이다.

“나는 전쟁도 사회 불의에도 직접 뛰어들어 싸워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과의 싸움은 날마다 끊이지 않았습니다. 맥없이 지는 날도 있었고 철저하게 이기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의 빛깔을 새순이라는 모양으로 내게 주어진 터전에서 푸릇푸릇 티어왔습니다.”

그렇게 자신과 싸우면서 틔어온 ‘삶의 새순’으로 그는 현실을 극복하는 신앙과 의지의 근육을 길러왔다.



철저한 방황의 공간에/ 말간 빛이 든다/ 의지의 새벽/ 희망찬 생의 하루가/ 정원에서 생동한다// 아직 부시시 뜨여진/ 눈으로 종유나무처럼/ 우뚝 서서 길고 길었던/ 설레임의 순간을 맞이 하기 위해/ 기도의 샘물로 씻어내어/ 먼지 한알 띠끌 하나 때문에/ 맑은 빛이 주름지게 하진 말아야지 ­ 시 ‘의지의 새벽’ 전문.



그런 의지를 통해 그는 자신을 넘어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는 성숙을 경험하고 있다. 대구밀알선교회 대표인 김광식 목사와 함께 선교회 창립멤버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한국장애인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으로 ‘청민문학상’까지 제정, 문학에 뜻을 두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워주고 있다.

그런 그는 올해 4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50이란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있다. 육체는 비록 중증 장애인이지만 시인으로서, 한국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천상병 시인처럼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제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신체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혼자만 간직할 수 없습니다.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을 가면 더 깊은 학문도 배우고, 또 저와 같은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는 육체적 장애라는 한계를 딛고 좀더 넓은 삶의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그 언덕에는 신앙과 희망, 용기와 인내라는 나무가 향기로운 꽃을 피워올리고 있다. 그는 그 길로 향하는 길을 조용히 기도로 묻고 있다.



바람이 불려합니다./ 가슴에 고요히 접어 두었던/ 그리움이 고개를 들 때면/ 나의 전신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기// 주여/ 어떻게 하여야/ 그 뜻의 성취가/ 나의 향으로 빛나게 됩니까. ­ 시 ‘주여’ 전문.

김지홍 기자 atmark@kidok.com



〈취재후기〉 이흥렬 시인은 사실 혼자 살기도 벅찬 여건이다. 뚜렷한 경제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정부보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지급되는 돈이라고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30여만원의 보조금이 전부이다. 그 돈으로 그는 한달을 견뎌간다. 그런 그에게 대학진학의 가장 큰 복병은 학자금이다. 그가 희망을 갖고 문학의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도록 뜻있는 독지가가 나서 준다면 그에겐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다.

대구시 중구 대봉 1동 47-13. 053)424-7102, (054)972-9301. www.cyworld.com/ leehueng10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