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하나님이 세우신 전달자들이다. 죄와 교만으로 인해 뒤틀린 세상의 장벽을 뚫고, 왕국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으로 저들을 양육해야 할 책임을 지닌 막중한 사명을 띤 사명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명자들이 정작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 보다는 혼란스럽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변을 바라보면 이러한 불안감은 우리의 현실이 된다.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은 뒷전이고, 난해하고, 현장과는 먼 추상적이고, 권위주의적 언어들이 난무한다. 진리는 고색창연한 색유리 같은 언어로 포장되고, 사람들은 확실하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들을 상실 당한다. 아이로니칼 한 것은, 많은 사역자들이 이를 잘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건 복음을 받아들인지 일정한 기간이 지나게 되면 각 사회내에서 기독교인들은 계층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점차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은 뒤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에 비해 우월한 문화적 형태와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먼저 믿음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한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과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기 쉽다. 때문에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생소한 단어나 표현 방법을 통해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려 한다. 그 결과, 교회는 점차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고, 그러다보니 세상과는 담을 쌓게 되고, 특히 불신자 선교의 기회를 점점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과정은 역사 속에서 과거 주목할만한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쇠퇴를 경험한 주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신앙이 전달되는 말에서 먼저 시작됨을 말해주는 것이다. 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고, 그를 통해 복음의 역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몇가지 면에서 지혜를 가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첫째로, 모든 성도들은 겸손한 마음가짐의 언어 생활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자만심과 우월감을 가지려는 경향이 강하다. 더군다나 천국백성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받은 성도들로서는 쉽게 우월감과 자만에 빠지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주님은 제자들을 발을 씻기시는 모범을 보이셨다. 자기 보다 남을 높이는 이러한 태도에서 복음의 감동적인 역사는 시작된다. 교만한 마음과 우월감을 극복하지 못한 성도는 주님이 모범을 통해 제시하시는 복음을 아직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가짐에서 오는 언어 사용은 주님의 보내신 성령의 역사에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일이다. 둘째로, 이러한 겸손한 마음을 바탕으로 성도들 상호간에 수용자 지향적(receptor-oriented) 언어 사용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예를 들면, 교사 선생님들은 흔히 자신의 수준이나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말을 사용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말과 그들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의 적용이 필요하다. 먼저 믿는 성도들은 자신이 처음 예수 믿을 때를 생각하며 새신자와 말해야 하고, 많이 배운 성도는 적게 배운 성도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셋째로, 불신자와의 관계에서 효과적인 복음전달의 기술을 모든 성도들은 잘 익혀야 할 것이다. 기억할 것은, 성도들은 복음안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불신자들은 복음을 소유하지 못한 채, 수십년을 세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성도와 불신자는 전혀 다른 삶의 규범, 문화, 언어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도는


이렇게 다른 불신자와의 대화를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불신자를 잘 이해하고, 불신자의 입장과 수준에서 복음전달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올바르고 바람직한 언어 생활을 통해 보다 역동적이고 효과적인 복음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또한 선교의 현장에 왕성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정병관'총신대 선교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