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이하 총회)의 지난 50년은 인간적인 수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役事)하셨던 역사(歷史)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해방과 함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에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한국교회를 강타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는가 하면, 6.25 전쟁을 거치면서 신비주의적인 종말론으로 무장된 사이비집단의 무차별한 공격에 성도들은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건 일치의 모습을 견지하지 못하고 분열의 역사 한가운데 총회가 서있었다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분열의 아픔 : 해방 바로 전후에는 김재준 목사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고, 54년 결국 교단이 나눠지는 아픔(기독교장로회로 분리)을 경험했다. 그러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던 성경무오설과 영감설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분열의 고통도 감내할 수 밖에 없었다.


59년 WCC와 NAE 관계 문제로 인해 통합총회와 분리된 이후 10년 가까이 재일치를 위해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헤어짐보다 더 어려운 것이 다시 만나는 일이었던지 그러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정치적인 갈등 끝에 79년 교단이 다시 한번 비주류와 결별, 지금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의 백수십여개의 교단이 난립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갖고 있다.


신학적인 문제로 인한 헤어짐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갈등으로 인해 돌린 등은 다시 한번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90년대 후반 들어 신학적으로 뜻을 같이 하는 몇몇 교단들과의 재일치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교회의 장래를 생각할 때 다행스런 일이라는 평이다.




사이비집단의 준동 : 6.25 후유증에 시달리던 한국교회의 변두리에서 사이비집단들이 한국교회 성도들을 유혹했다. 이들은 주로 왜곡된 종말사상을 주입시켜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던 교인들을 현혹시켰다. 대표적인 집단으로 박태선의 전도관,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 문선명의 통일교를 꼽을 수 있겠다.


총회는 55년과 56년 나운몽이 장로교 신경에 맞지 않으므로 이를 막기로 하고 박태선을 이단으로 규정했으며 문선명에 대해선 통일교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문집단」 또는 「문선명 집단」으로 칭하기로 83년 결의했다. 최근 들어서는 김기동(89년)과 이장림(91년) 류광수(96년) 등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단으로 규정하는 「결의」 그 자체에만 머물 뿐 적극적으로 교인들의 신앙을 보호하는 일에는 소홀했다는 평이다.




사회에 대한 관심 : 총회는 그동안 사회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정교분리 원칙 때문이었는지 정치적인 격변기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때때로 그러한 침묵은 암묵적인 동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유신체제, 군사독재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역사의 페이지 속에서 총회의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온 나라가 물 속에 잠겼던 96년, 총회의 모든 교회들은 무너지고 쓰러진 이웃들을 세우기 위해 너나 없이 사랑의 손길을 뻗쳤다. 급기야 수해로 인해 사상 초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동포를 살리기 위해 총회 산하 교회들은 10여억원이라는 막대한 기금을 모아 사랑과 희생이 담긴 밀가루를 북한동포들에게 보내, 장자교단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IMF 경제구조에서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실직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교회마다 무료급식소를 설치해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개교회 단위로 전개되고 있을 뿐 총회 차원에서 이뤄지지 못하는 것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우리 총회의 지난 50년 역사에 대해 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총회가 보수신학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단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 21세기를 위해 무엇인가 기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정치적인 소모성 논쟁이 너무 많았다는 점,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데 리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 등은 반성해야 할 여지가 있다. 그동안의 분리주의와 폐쇄주의를 극복하면 새로운 세기를 선도하는 교단이 될 것으로 본다.』(박용규)


『학문적으로는 정통보수신학을 사수했지만, 교회현장에는 비개혁적인 이질적인 새로운 물결이 쉽게 유입됐다. 사회에 대한 관심 문제도 교단적으로 신학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접근되고 있다. 성장지상주의라는 우상 아래 신학교의 거대화는 또 다른 폐단을 가져왔고, 교단의 선교열기는 근래 교회사에서 유래없을 정도로 뜨겁지만 이제는 다시 한번 차분히 평가해야 할 시점이 됐다.』(심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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