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최근 3년간 접대비가 1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정, 룸살롱, 골프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접대 문화의 거대한 규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접대 문화의 영향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성도들이 접대 문화의 거대한 압박 앞에 고민하고, 흔들리고 있다. 접대 문화의 한 전형인 룸살롱 문화는 공범을 만들어 유대감을 갖게 하는 일종의 패거리 문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어떤 여성 방송인은 이렇게 말했다. “폭탄주, 호스티스 옷 벗기기, 필름이 끊어지는 몸부림으로 끝나는 술 접대문화는 공범 만들기 문화이다. 첫째, 모든 남자는 예외없이 짐승인 점을 확인하는 동지애를 얻기 위함이고, 둘째는 불법도 부정도 골고루 나눠먹자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부패 구조는 이런 접대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쉽게 고칠 수 없다. 진짜 통탄할 것은 이 사회의 중요한 결정이 바로 룸살롱에서 몸부림치는 짐승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접대라는 개념을 손대접, 또는 환대로 설명한다. 환대는 명령이자 복의 길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두 번의 환대를 통해서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다.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후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조카 롯을 구한 다음 팔레스타인의 실력자로 등장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환대를 통해서 높임을 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로 변화되었지만 그것으로 패권을 추구하지 않았다. 힘을 가지고 그는 섬기는 데 사용했다. 이것이 성도의 섬김이다. 성도의 삶은 환대의 삶이다. 이것은 접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겉의 대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속의 환대하는 마음이다.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실한 환대는 전달된다. 성도는 이런 환대를 통해서 복되고, 또 남을 복되게 만든다. 진실됨을 추구하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사업상의 상담은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만날만한 장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접대문화의 한계를 느낀 기업들도 최근에는 새로운 시도들을 하는 듯하다. 대안을 살펴보자.
첫째, 공연장이나 경기장을 환대의 장소로 정한다. 미국 피츠버그 시 당국은 피츠버그에 경기장이 많지 않아서 상담이 다른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피츠버그 경제가 악화된다고 판단, 미식축구구장과 야구장을 같이 쓰던 경기장을 부수고 미식축구장으로 하인쯔 필드를, 야구장으로 피엔시 구장을 따로 만들었다. 이렇게 굳이 이중지출을 한 까닭은, 미국에서는 경기장이 사업 상담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경기장이 많아야 많은 상담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경기장 맨 꼭대기에는 브이아이피(VIP) 룸이 따로 있어서 여기서 식사하면서 경기를 즐기며, 상담도 이루어진다.
둘째, 같이 운동하라. 사업 상담은 아니지만, 종종 교회를 방문하는 외국 지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관광을 시켜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와 함께 한강으로 가서 같이 운동할 때, 굉장히 좋아한다. 수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도심에 남산과 같이 좋은 산이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같이 남산 길을 거닐어 보라. 멋진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셔보라. 오히려 막힌 문제의 상담이 더 깊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나는 주로 한강으로 자전거를 같이 타러 가자고 한다. 한강대교에서 시작해서 한강 하류의 성산 대교 정도까지 같이 타고 가면, 한국의 아름다운 강과 자연에 대해서 탄복한다. 그리고 식사는 한강 유람선 안에서 하면, 최상의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 결국 접대라는 것은 자신이 건전하게 즐길 줄 알아야, 남에게도 건전한 즐거움을 선물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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