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첫 통성기도’


'오늘부터 ‘신세원 목사의 한국 교회 이야기’를 ‘문소재에서’라는 이름으로 싣습니다. 문소재(文巢齋)는 한국 교회사의 귀한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신 목사의 자료실 이름입니다. 신 목사의 고향인 의성(義城)의 옛 이름인 문소(聞韶)를 음차하여, 한국 교회의 소중한 문서(文)가 깃들어(巢) 있는 곳(齋)이란 뜻에서 그렇게 부릅니다.'

1907년을 한국 교회의 오순절이라고 부른다. 그해 1월 6일부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선교사들과 평양 시내를 중심한 신도들이 함께 모이는 대사경회가 열렸다.
이 사경회는 장장 10일간이나 계속되었는데 남자만도 1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집회는 주로 성경공부에 주력하였으며 저녁에는 전적으로 전도대회를 하였다.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는 거의 다 고백되었다.
집회는 계속되었고, 그 다음 토요일 이길함 선교사(Graham Lee)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설교를 마친 다음 누구든지 두 세사람만 차례대로 기도하라’고 했다. 그때 은혜를 입은 성도들 20여명이 한꺼번에 일어나 순서없이 동시에 큰 소리로 기도했다. 은혜도 되었지만 동시도 혼잡도 되었다.
그때 이길함 목사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지, “그렇다면 우리 다 함께 기도합시다”고 하였다. 그때 온 회중이 일제히 큰 소리로, 통성으로 기도하였는데, 그 소리는 마치 큰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특징적 현상 중의 하나인 ‘통성기도’의 시초가 되었다.
한국 교회의 부흥의 역사에는 그렇게 간절한 통성 기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통성의 기도는 오늘도 간절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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