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듯이 목사는 노회를 그런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 목사의 소속이 노회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노회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목사가 많아야 한다. 교단 산하에 많은 노회가 있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노회가 있는가 하면 속이 곪아 곧 터질 것 같은 노회도 있다. 왜 이런 양분화 현상이 나타나는가? 구성원 자질의 차이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목사에게서는 건강한 삶이 형성되고 표현된다. 그러나 내면을 포장한 사람에게서는 우스꽝스런 행동만 나올 뿐이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노회를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첫째, 개혁하는 노회가 되어야 한다. 개혁을 밖에서만 찾으면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다. 진정한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자기의식의 전환과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남긴 산물을 보라. 피와 울분이다. 개혁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종의 자리로 돌아가라. 낮은 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숨소리를 들으면 각자 자신의 서야할 자리를 알게 될 것이다.
둘째, 정직한 노회여야 한다. 불의한 자가 판치면 의인이 사라지고 정직이 사라지면 불의가 판을 친다. 한마디로 불의는 사단의 도구이다. 사단은 불의를 칼처럼 휘둘러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 노회를 지도하는 리더들은 재정관리가 투명해야 하고, 인사관리가 유리처럼 맑아야 한다. 옛날부터 돈이 있는데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사람 가는데는 돈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교만하여 어느 특정인이 주인 행세하면 하나님이 그 교만을 꺾으신다. 부정직한 행실로 자기 울타리를 치면 명예, 돈, 사람 잃고 초라함만 남는다. 뼈가 훤희 보이는 고기처럼 뼛속까지 보여주어도 흠잡을 것 없는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셋째, 생산적인 노회여야 한다. 많은 노회들이 소모전에 돌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칼자루를 쥐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노회 구성원의 생각의 속도가 세상보다 더 빨라야 앞서갈 수 있다. 노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교회를 돌보고 섬기기 위한 것이며, 더 나아가 복음 전파를 위한 상회기관으로 서 있는 것일 뿐이다. 선교와 교회개척, 건강한 교회를 세워 가는데 노회 구성원들의 힘이 결집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총회 산하 모든 노회들이 이 사명을 회복하고 제사장적인 마음으로 좀더 각골하고 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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