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릭/한 윤 아


〈가베〉 이란. 1998. 모센 마크말로프 감독
이란 영화는 지금도 ‘제작중’이다.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가베〉는 여자들 이야기이다. 이슬람의 여자들하면 검은 차도르와 그 안에 가려진 어두운 그네들의 일상이 떠오르지만, 역설적으로 〈가베〉는 그러한 상황도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똑같은 인생임을 느끼게 한다.
이란의 특산물 ‘카펫’이 이야기의 주요한 모티브다. 화려한 카펫에 수놓아진 형형 색색의 무늬들은 여자들의 노동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여자들의 ‘이야기’ 그 자체이다. 마치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카펫 위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 슬프기도 한 이란 여성들의 현실과 묘하게 겹쳐진다. ‘아버지의 법’과 ‘종교의 법’이 형법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작동하는 이란에서, 여자들에게 결혼제도란 그녀들의 선택과는 무관한 것이고, 때때로 삶을 무덤으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동네 총각을 사랑하는 부족장의 딸, 아리따운 처녀 ‘가베’는 안타까운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무서운 아버지 때문이다. 삼촌이 결혼할 때까지 결혼은 안된다고 하더니, 삼촌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하자, 이번엔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안된다고 한다. 무시무시한 총을 들고 딸의 결혼을 방해하는 아버지의 속내는 사실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었다. 사막의 유목민인 그들의 가족에게 ‘딸’이란 생계를 이어가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랑에 빠진 처녀의 안타까움은 얼마나 애가 타는 것인지. 그녀는 점점 생기를 잃게 되고 그녀가 짜내는 카펫도 점점 색깔을 잃어간다.
〈가베〉는 이란 영화에 대해 혹시나 가질 수 있는 몇가지 선입견을 한순간에 부끄럽게 만드는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다. 푸른 하늘에 손을 대면 손이 파랗게 됩니다…하면서 실제로 손을 파랗게 만들어 버리는 몇몇 위트있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기도하다.
〈가베〉를 만든 모센 마크말로프 감독은 깐느 영화제 등 유수한 국제 영화제에 소개되어 세계인들의 박수를 받았는데도, 정작 이란 내부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엄격한 검열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직까지 이란에 남아있는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참 ‘가베’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첫 장면에 카펫을 씻으면서 가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노부부에게 여쭈어보시길. 그들이 씻고 있는 카펫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커플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가베〉는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