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대구 반야월교회)

작년만 해도 이 맘 때쯤이면 성탄 카드와 신년 카드가 집배원을 통해서 한 아름씩 배달되어 왔는데 올해는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집배원의 손길을 통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전자 우편 카드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내 아내와 우리 집 아이들도 전자우편으로 카드를 보내는 형편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의 논리는 “돈 안 들고 시간 절약되는 이 메일 서비스를 두고 왜 19세기식 구닥다리 카드를 보냅니까? 그런 카드는 인터넷을 사용 못하는 사람들이나 보내는 거예요”라고 한다.
아이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이 너무 삭막해져 인정이 메말라 가는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이렇게 변한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월은 참 많이 변했다.
이러한 세월의 변화와 함께 우리는 또 한 가지의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목회의 환경에 대한 변화이다.
세월이 변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적 환경이 변했다는 말이고, 환경이 변했다는 말은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변했다는 말이다. 사람이 변했다면 사람을 상대로 하는 목회의 환경도 당연히 변한 것이다. 목회의 환경이 변했다는 말은 곧 목회의 방법 또한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섭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만 변화의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그러나 너무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을 하면서도 목회적인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을 갖지 못하는 듯 하다. 이러한 인식의 결여가 교회가 세상을 향한 역동성과 공격성을 잃도록 만들고, 목회자와 목회자간에, 또한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갈등의 심화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분쟁으로 까지 발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한 인식, 목회적인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십여 년 전,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책이 있었다. 조지 바나(George Barna)가 쓴 “주전자 속의 개구리”이다. 개구리를 주전자 속에 집어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개구리는 물의 온도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편히 헤엄을 치고 있다가 결국은 펄펄 끓는 물에서 조용히 죽고 만다는 것이다. 참 의미 있는 깨우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인식은 한 두 사람만 가지고 있어서 될 일은 아니다. 교회의 목회자는 물론이고 교회의 모든 리더그룹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된 목회방법, 곧 변화된 목회환경에 대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고, 또한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공유란 쉽지 않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며, 자신에 대한 희생과 기득권 포기 없이는 공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하고 바람직한 것이라도 독선과 아집의 방화벽을 뚫고 통과하기에는 큰 힘이 들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희망찬 새해를 소망하며 교회의 부흥을 기대할 것이다. 그 기대의 성취를 위해서라도 교회의 모든 리더들이 변화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하고 오늘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아름다운 헌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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