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일 (일하는제자들 편집장)

엊그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백제군이 고려의 수도를 유린하는 장면을 보는데 아차, 아직 아들이 잠들지 않고 물끄러미 TV를 보고 있었다. “뭘 그리 열심히 보냐? 그만 봐라” “재밌잖아. 우리 친구들도 다 봐요”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피비린내 나는 폭력적 장면이 넘치는 드라마를 봐야 하는 이유를 들으면서 큰 공부를 했다. “그럼 아빠도 안 볼게, TV끄자” 합의하고 미봉했지만 아들의 말이 오래 내게 남았다. 재미있고 또래의 친구들이 다 보기에 자기만 안 보면 함께 어울릴 수 없다고, 그러니 졸려도 봐야 한다니….
요즘의 ‘해리 포터 열풍’에 대해 크리스천들이 걱정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둔 해리 포터 시리즈는 1997년에 처음 나온 이후 세계적으로 1억 2400만 권 이상이 판매되었다.
책 판매만이 아니다. 한 쇼핑몰에는 해리 포터와 관련된 책과 용품들이 46가지나 되었다. 인터넷에 개설된 해리 포터 관련 팬클럽 홈페이지만 1200개가 넘고 포털 사이트나 쇼핑몰 업체들도 앞다투어 해리 포터로 장사하고 있다. 공책과 같은 문구류, 달력 등은 물론이고 한 쇼핑몰 안에는 유명한 완구업체가 만든 해리 포터 장난감이 비싼 것은 16만 9000원에 팔리고 있다.
세계적인 문화 현상인 해리 포터가 도대체 어떤 내용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마법을 배우는 소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이모 집에서 구박받으며 살던 소년이 알고 보니 마법 세계를 악한 마법사로부터 구한 마법사의 아들이었다. 열 한 살 생일을 앞두고 우연히 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가 그곳 환상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휘황찬란한 마법 이야기이다. 동화보다 한 단계 더 황당한(?) 판타지 문학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한 학생 네티즌은 이렇게 말한다. “3권은 주로 학교에서 읽었다. 요즘 학교는 말이 수업이지 거의 노는 시간이므로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 쉬지 않고 읽었다. …” “며칠 간의 두근거리는 기다림 끝에 불의 잔 3권이 내 손에 놓여졌다. … 드디어 책장을 넘겨 읽기 시작했을 때의 행복감이란, 후∼”
해리 포터가 이렇게 우리 청소년들의 성원을 받는 이유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간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시대 조류에 반발하는 서구의 정서적이고 낭만적이며 감성적인 성향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것이다. 이른바 뉴에이지 문화로 표현되는 탈합리주의적 풍조가 만연하여 초월과 상상 속의 환상 세계를 사람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우리 시대의 큰 문화 현상이다.
문제는 이런 세상의 큰 흐름과 유행을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며 교회가 어떻게 가르치는가에 달려 있다. 마법은 성경에서 금하는 것이므로 해리 포터를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뭐라고 말할까? “재미있고 친구들도 다 보는데요?”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래서 성경적으로 옳은 것으로 이만큼 재미있게 크리스천들이 만들어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면 아마 무책임하다고 돌 맞을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보자. 누구나 어릴적에는 동화와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며 자란다는 점을 기억하고 아이들과 함께 그 책을 읽으면서(사실 웬만한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다) 문제가 되는 점을 짚어주는 것이다. 해리 포터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마치 마법으로 움직이고 마법사가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건 그야말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며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진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좋지 않은 내용을 가진 해리 포터가 좋은 공부 교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책(과 영화)은 재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간접 경험을 통해서 영과 정신의 양식이 되게 하는 기능도 있는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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