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그림 그리는’ 한미순 화백 세 번째 작품전


“저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헌신하며 도와주신 이웃들과 함께 만들어간 작품이죠. 화폭을 준비하고, 물감을 직접 짜준 도우미의 손길에서부터 나를 위해 기도해준 이웃들, 그리고 야외 활동이 불편한 저를 위해 아름다운 사진들을 보내주신 이름 모를 사진작가분들의 호의가 없었다면 제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중증 전신마비로 손발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그러나 영혼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구필화가 한미순 작가. 세 번째 작품전을 준비하는 한 작가는 유난히 설레는 듯하다. 붓을 입에 물고 조금씩 그려나간 38점의 그림이 표구를 위해 운반될 때도 운반하는 분에게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1년여 가까이 쉬지도 않고 매진해온 작품들이 이제 곧 세상의 빛을 본다. 
‘자연과 삶의 숨소리’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회는 그림 속에서만큼은 사계절 자연과 삶의 숨소리, 순수한 진실의 향기를 얼마든지 언제라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한미순 작가의 잔잔한 행복이 펼쳐진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과 같다.  
22년 전, 결혼을 한 달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고통의 나락에서 정신을 차려봤을 때 그곳은 전능자의 품이었다는 한 작가. 그 분의 사랑을 느끼고 그 분의 위로에 힘입어 고통의 순간순간에도 감사와 기쁨이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그 기쁨을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한 작가의 집 한 구석에 먼지가 쌓인 피아노가 보인다. 한 작가의 방에는 상당한 수준급의 서예 작품들이 잔뜩 걸려 있다. 사고를 당하기 전, 건강할 때 욕심내어 왕성하게 활동하던 흔적이다.  
“건강할 때는 목마르기만 했던 삶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거저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됐죠. 작은 일, 하찮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었어요. 세수하고, 옷 입고, 목욕하는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감사한 제목들이죠.”
하루 종일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한 작가의 치아는 이미 상할 대로 상해 있다. 그러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그만둘 수 없다. 나무토막 같은 몸이지만, 할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고 힘이 난다고 한다.  
“저에게는 육체가 치유되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기적이죠.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호흡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데… 단지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내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생명의 외침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문학에도 소질이 있는 한미순 작가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 수필, 소설도 집필하고 있다. 이미 문학 공모전에 당선된 경력이 있는, 프로 작가이기도 하다. 어느 새 ‘사지마비 1급 지체장애인’에서 ‘세계구족화가 연합회’ 구필화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한 작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한 달란트를 땅 속에 결코 묻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고 있는 한 작가의 개인전은 11월 1일(수)에서 11월 7일(화)까지,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735-2655~6)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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