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일본 <정론>지 기고문 내용이 큰 물의를 일으키자 한승조씨는 영화 제목 그대로 ‘공공의 적’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대단히 다행스런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문제가 되어 공분을 자아낸 대목이다. 이 한 구절 만해도 필자인 한승조씨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기에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이면에 담긴 드러나지 않은 의미와 배경은 실로 진실되기 그지없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본은 우여곡절 끝에 근대화에 성공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축적된 폭력적 힘을 주체하지 못해 제국주의 내지는 군국주의를 만들어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반도 침탈로 이어지며 우리 땅에 군국통치와 권위적인 국가주의 문화의 씨를 뿌렸다. 일이 안 풀리다보니 미국과 소련의 제국주의적 분단 정책이 해방 후에 이어졌고, 일본군 장교 박정희씨의 쿠데타 집권은 일본식 국가주의와 군사문화를 우리 땅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였다. 결국 과거 30여년 간 이어진 군부 독재정권의 이념과 이 땅의 군사문화는 한일합병과 일본의 식민지배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군부정권 하에서 기 펴고 살던 이 나라 극우보수세력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은 결코 낯설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은 나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 씨가 일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발로이자 솔직담백한 고백이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의 침탈이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숙명이었다고 해도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일본에 의해 점령된 게 천만다행이라는 논조는 불행히도 파시즘적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파시즘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좌파를 견제하고 뿌리 뽑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이념이나 세력과도 손잡았다. 또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해 섬멸하려는 정치적 폭력을 방법으로 삼았고 이를 위해 대중을 선동하는 한편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반공의 이념 아래 희생시켰던 이념이다. 그러니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파도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라 없는 설움이나 식민지배 쯤이야 큰 대수겠나 하는 이 문장의 저변에 깔린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파시즘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근거로 한다면, 일본 군국주의 문화를 토양으로 해 자라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기득권 세력으로 길러진 이 땅의 극우수구세력이 친일 감정을 품고 파시즘적 선동을 감행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지상과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씨의 글에 대한 성토가 봇물처럼 터지는 상황에서 군사전문가 모씨나 언론인 모씨 등 이 나라 극우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당당히 한씨를 두둔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유야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번 사건으로 극우수구세력의 혈액형과 성장배경, 정치철학에 대해 확연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성조기를 흔들고 인공기를 태우는 집회에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신앙의 이름으로 나서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한 씨의 글로 인해 스스로를 되돌아 볼 기회를 얻고, 그 흔들리지 않는 맹목적 진정성과 일관성에 아연 감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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