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올 한 해를 돌아보니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이 유난히 마음을 무겁게 한다. 어쨌든 사랑 없는 모습이었다. 이런 때에 성탄절을 맞으며 냉랭한 세상에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의 성육신을 본받을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우리 문화는 되갚는(pay back) 것에 익숙해 있는 듯하다. 부조(扶助)와 같은 품앗이 전통도 결국 되갚는 것이다. 물론 되갚기만 제대로 해도 우리 사회는 좀 더 바람직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받은 것을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갚는(pay forward) 법도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의 원래 제목이 (Pay it Forward)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고 번역한 한글 제목도 마음에 든다.
한 프리랜서 기자가 취재하다 차가 부서졌을 때 고급 스포츠카 재규어를 그냥 주겠다는 변호사를 찾아 취재를 하면서 황당한 캠페인을 추적해간다. 변호사는 자기도 한 흑인 건달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갚는다고 했다. 딸이 천식으로 응급실에 갔지만 의사들이 치료를 제대로 안 해주어 위급할 때 그 남자가 총을 쏘며 의료진을 위협해 딸이 목숨을 건졌다. 그 때 어떻게 보답할까 물으니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감옥에 갇혀 있는 남자를 찾아갔고 그가 경찰에 쫓길 때 도움을 준 알콜 중독자 노파를 찾았다. 노파는 의절했던 딸에게 사랑받았고 그 딸은 그녀의 아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추적하다보니 노파의 손자 트레버가 다니는 중학교 1학년 사회 시간의 숙제로부터 이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화상 흉터가 심한 유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좋든 싫든 사회 안에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수군대던 아이들 중에 한 아이는 "Nothing"이라고 말하지만 고민하던 트레버는 다음 날,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사랑받은 사람이 받은 사랑을 다른 세 사람에게 베풀어 나가면 점차 세상은 달라진다는 주장을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단 그 사랑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의미있는 사랑이어야 한다.
트레버는 알콜 중독자인 노숙자를 돕고 유진 선생님과 엄마를 짝지어 주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한 듯해서 실망한다. 마지막으로 늘 따돌림 당하는 약한 친구를 도우려고 친구를 때리는 아이들과 맞서다 칼에 찔렸고 결국은 죽고 만다.
이 무렵 이 운동을 추적하던 기자가 트레버를 찾아가 인터뷰도 마쳤고 트레버의 죽음으로 이 운동은 더욱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트레버의 집으로 찾아왔는데 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 사랑을 갚아나가는 사람들이었다. 트레버는 몰랐지만 그의 사랑 실천은 모두 성공했고 결국 그 운동은 세상을 바꾸게 되었다. 사랑을 받고 남에게 베푼 사람들이 들고 온 촛불의 빛은 어떤 성탄 트리보다 아름답다.
트레버의 죽음을 보면 친구를 위해 죽은 예수님이 생각난다.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오늘 우리들, 크리스천들에게서 시작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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