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전문의로 외길인생 30년…은퇴후 ‘생명 사역’에 남다른 열정 역사·신학 의료에 접목, 수많은 책 펴내… “내 모든 뿌리는 신앙”


전재규 장로(65·대구서현교회). 그를 한마디로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는 힘들다. 요즘같이 세분화된 시대에 한 분야 외에는 무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다. 전 장로는 분명 의료인이다. 30년 넘게 대구에 있는 동산의료원에서 마취과 의사로 외길인생을 걸어온 의사다. 최근에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여전히 명예교수로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는 교수다. 그는 남다른 역사의식을 갖고 숨겨진 역사를 알리는데 앞장서는 역사가요, 평신도이지만 신학자 못지 않은 신학적 안목을 가진 신학자다.
전재규 장로의 소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은퇴 전후를 기점으로 최근 그가 매진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호스피스사역을 통한 ‘생명사역’이다. 현역시절보다 은퇴한 지금 전 장로를 더욱 바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2001년부터 한국호스피스협회 초대이사장으로 섬기면서 지금까지 그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호스피스 사역이 곧 ‘복음’

1966년 도미, 외과전공의와 마취과 전공의 수련을 받은 전 장로는 1972년 미국 클리버랜드병원에서 일하고 있을 당시 동산기독병원장이었던 마펫 박사로부터 마취과 의사로 와 달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해 12월 31일 미국 생활을 접고 대구로 귀국, 이듬해 1월 1일부터 동산의료원에서 마취과장으로 30년간 봉직했다. 80년 대학병원으로 승격되고 81년부터 마취과 교수로 발령받아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그동안 전 장로는 204편의 논문과 22권의 단행본을 펴내며 마취과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계명의대 학장을 지내며 병원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대한마취과학회장, 대한통증학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마취과 의료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생명윤리와 의료윤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전 장로는 의료윤리학회를 창설했으며, 전인의학 교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의료윤리, 생명윤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호스피스사역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30년 넘게 의료계에 몸담으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호스피스 사역이 곧 복음사역이라는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알리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한국호스피스협회 이사장으로 내몰았고, 진정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남은 여생을 바치고 있다.
의사인 그를 두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신경외과 수술실은 긴장의 연속이다. 수술중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전 교수님은 마취환자 옆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수술팀의 긴장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신다. 그래서 전 교수님께서 수술실을 다니시는 모습만 보아도 안심이 되었다.” “전 교수님은 마취전 환자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 각별하다. 긴장한 환자에게 편안함을 느끼도록 관심어린 대화에서 시작해 기독인이거나 아는 사람이면 마취약으로 잠재우기 전 마음에 새겨질 정도로 간절한 기도를 하신 후 마취를 시작한다.”
또한 그는 30년간 수많은 학회참석에도 불구하고 아파서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역사 연구하는 의사

올해 2월이다. 대구3·1운동 84주년을 맞아 대구에서는 최초로 재연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대구시나 역사가가 아닌 의사인 전재규 장로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이처럼 전 장로의 역사의식은 남다르다. 1978년 대구동산기독병원 전도회 회장시 편찬한 전도회 연혁사를 시작으로, 1999년 동산의료원 100주년을 기념해 <사랑과 봉사의 발자취 동산의료원 100년사>와 <사진으로 보는 한국 100년사>를 발행했다. 또한 동산의료원 박물관장으로 지내면서 병원내에 ‘3·1운동 역사관’을 설치하는데 앞장서고 <동산병원과 대구3·1독립운동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발간해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또한 전 장로의 노력으로 동산의료원 구내 오솔길을 ‘대구3·1운동 길’로 지정하도록 만들 정도로 선조들의 소중한 유산과 정신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구·경북기독교역사연구회 이재원 회장은 이런 전 장로를 두고 짧지만 의미있는 말을 남겼다. “저 어른은 의사(醫師)가 아니라 의사(義士)가 틀림없어!”.

의술과 신학의 접목

전 장로는 지금 의과대학 강단뿐 아니라 신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다. 79년 대신대 신학과 야간을 졸업, 81년부터 대신대에서 신학영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신학대학원에서 <노인목회와 호스피스> <치유목회사역> 과목을 개설해 강의하고 있다.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난 전 장로는 지금까지 교회를 떠나본 적이 없다. 왠만한 의사들이 하는 골프나 장기와 같은 취미가 없다. 이유인즉 방학이면 하기성경학교 강사로 다녔고, 지금까지 500여 차례 교회 헌신예배 및 전도집회 강사나 특강을 해왔다.
최근 전 장로는 신학자도 놀랄만한 일을 저질(?)렀다. 해박한 성경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사의 눈으로 본 십계명, 주기도, 팔복>(생명의말씀사)을 저술한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신학자 못지 않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신앙적 핵심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동시에 의사의 특징을 잘 살려 의학용어와 현장체험에서 체득된 것들을 세밀하게 적어놓았다.
<의사의…>외에도 현대의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치유 사역에 접목시켜 쓴 <통전적 치유와 건강>, 자신의 일생을 살아오면서 평소 생각한 성경말씀과 신앙생활을 글로 정리한 <내 집이 평안할지어다> 등 다수의 기독교 관련 서적을 발간할 정도로 다작가다.
“제가 보기엔 교수님은 의학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수년간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가까이 지낸 동산의료원 원목실장 장황호 목사의 말이다.

“그래도 장로가 더 좋아요.”

전 장로.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요즘도 일찍 자고 새벽 2시면 일어나 글을 쓰고 운동하고 기도한다. 자기관리와 신앙관리에 지나치리만큼 철저하다.
현재 그는 사비를 들여 호를 딴 ‘백암장학금’과 학교발전기금을 대신대에 쾌척했으며, 호스피스발전을 위해서도 아낌없다. 전 장로가 발간한 책의 모든 수익금 역시 호스피스운영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헌신은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오면서 주는 것이 복되다는 진정한 인생의 기쁨을 몸소 깨달은 데서 비롯된다.
끝으로 짓궂은 질문하나 했다. ‘그많은 일중에 가장 소중한게 뭐냐고’. 지금 그가 워낙 그가 많은 직함과 관심분야가 많았기에….
“나의 인생의 방향과 건강을 지켜준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른 직함은 누구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장로라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잖아요. 저의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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