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신학 미래는 선교과제 실천에 달려”

강연 머리에서 힐레 박사는 “다른 신학들과 구별되는 복음주의 신학의 특성” 곧 복음주의 신학을 복음주의 신학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며,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발전한 신학이라는 점에서 선교에 대한 근본적인 헌신을 그 신학의 특성으로 한다고 말했다.


“나는 복음주의 신학은 그 선교적 과제를 잘  섬길 수 있을 때에만 미래를 가진다고 믿는다”고 말한 힐레 박사는 대위임령에 대한 제계적인 주석을 시도해 “그리스도께서  보장하신 미래가 있는 복음주의 신학의 모습”을 그려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는 말씀을 먼저 꺼낸 힐레 박사는 이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대위임령 안에서 모든 신학적 진리는 인격적 진리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도께 모든 권세가 주어졌으므로 신학자들은 그의 말씀을 그저 문헌에 있는  말씀으로만이 아니라, 그의 살아 계신 말씀으로 당신의 계시하시는 실재적인 그리스도와의 상호관계 가운데서 그 말씀 앞에 서야만 한다.
이것은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성경을 역사적 관심의 수준에서만 다루는 소위 역사비평신학자들을 구분하는 차이들 가운데 하나이다.
참된 신학은 가르치시는 그리스도와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 계시하시는 하나님과 성찰하는 신학자 사이의 강력한 역동적 관계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신학적 성찰은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 꿇어 경배하는 겸손한 종의 태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복음주의 신학의 미래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고, 그 제자들을  통해서 그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의 권위에만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어 힐레 박사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에 대한 주석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제자 삼는 과정 안의 한 기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신약 성경적 의미에서의 신학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복음주의 신학과는 달리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사유를 주어진 참된 계시의 권위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신학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해는 그 정의상 복음주의적이라고 불릴 수 없다”고 비판했다.
힐레 박사는 복음주의 신학은 또한 “그 원천을 마음의 회개,  곧 마음과 지적인 행동을 새롭게 함에 두고 있다”며 “복음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신학의 시금석은 성경적  사유에 의해서 형성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삼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성
숙하게 세워가는 일에 성령에 의해서 힘을 부여 받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신학을 가치있게 하고 타당성 있게 하는 것은 그 어떤 특정한 학문적 기준이 아니라, 오직 그 내용의 성경적 토대와 그것이 언급되는 그 선교적 목적이다.”
힐레 박사는 이어 복음주의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은 물론이고 “그저 정통파 신학”과도 구별되게 하는 것으로 “영적인 열망의 유무”를 들었다.
“성경적 토대에 근거해야만 하는 기독교 신학의 객관적 내용에서는 그저 정통파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복음주의  신학이 부흥을 갈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한다는 점에서 그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복음주의 신학은 그 모든 사유와  성찰의 깊이에 있어서 비그리스도인들의  회개와 변화를 열망하며, 이미 믿는 이들의 삶에서의 점증하는  성화를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건덕을  추구한다. 좋은 복음주의 신학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섬김으로써 영원한 열매를 맺기를  열망하는 것이다.”
힐레 박사는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를 주석하면서,  여기서 ‘모든 것’이라는 말은 “복음주의 신학의 성경 이해를 위한 두 가지 원칙을 함의한다”고 말하며, 16세기 개혁자들의 두 가지 근본적인 해석학적 표현, 곧 ‘오직 성경’과 ‘성경 전부 다’는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에서 유지되고 주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힐레 박사는 특히 이 두  가지 원칙을, 비기독교적 신앙들과의 종교간  대화에 대한 현대의 에큐메니컬적 접근에 대항하는 주장으로 제시했다.
“복음을 선포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다양한 사역들은 성경적 진리에 근거하고 선교적 목적을 지닌다는 그 토대에 있어서는 영적으로 하나요,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선교의  에큐메니컬적 확대는 우리들을 성령께서 주신 풍성한 서로 다른 은사들과 교회 안에서의 다양한 사역들을 진진하게 연구해야만 하게 한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전도해야 할 사람들의 처해 있는 상황들이 아주 다양하기에 복음을 가르치는 선교적 적용에서의 다양성이 있을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을 가르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질문들을  바르게 다룰 수 있도록 성경을 조심스럽게 잘 연구해야만 한다. 이것은 구약과 신약의 성경적 연관성을 잘 찾아 드러낼 수 있는 능력과 계시의 의미가 어떻게 오늘날의 구체적인 정황에 적용될 수 있을지를 인식하는 것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서, 영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교회사와 그 선교를 부지런히 연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 신학은 모든 것을 검증하고 최선의 것을 포함시키는 상당한 자유를 지닌 진정한 ‘에큐메니컬  신학’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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