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통일된 본문”…파괴적 역사비평 허세 비판


복음주의라고 하든 보수라고 하든, 이 한 쪽의 신학 진영은 ‘역사비평’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비평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역사비평에 대한 학문적 비판마저 자칫 자유주의 신학으로 오해 또는 곡해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한 극복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먼 길처럼 느껴진다. 자유주의라고 하든 진보라도 하든, 또 한 쪽에서는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이야기 하면 선진 학문에서 한 참 뒤쳐진 것쯤으로 무시한다.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이야기하면 비학문적이고 근본주의적이라며 무시하는” 이른바 “진보적” 풍토에도 불편하고, 세계 신학계의 치열한 학문적 논구에서 밀려난 채 우물 안에 머물고 있는 이른바 “보수적” 안일에도 안타까워 하는 장세훈 박사를 만났다.
대화 가운데서 이사야서를 조각낸 역사비평의 “제국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인 허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논증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모두 보여준 그의 보충 설명의 도움을 받아 그가 최근 낸 ‘한 권으로 읽는 이사야서’(이레서원)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한 권으로 읽는’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딱딱한 학술 연구서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이일 것이다. ‘하룻밤에 읽는’이든 무엇이든, 어찌 어찌 ‘읽는’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간 책들을 시중에서 적잖이 목격한, 책 또는 출판에 상당한 안목과 관심을 가진 이라면 아마도 이 책의 제목에 식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권으로 읽는’이라는 수식어가 ‘이사야서’ 앞에 놓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순간 이 제목. ‘한 권으로 읽는 이사야서’는 이제 의미심장하기까지 해진다.
수월하게 읽을 만한 신학 교양서적 정도로 생각하고 이 책을 잡은 일반인들에게 굳이 이 책의 제목에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음을 강요할 까닭이야 없지만, 이 책을 쓴 이나 이 책을 만든 이는 분명 이 두 가지 모두를 ‘의도하고’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달았을 것이다. 이쯤에서는 이 책 제목 단 이의 재치까지 엿보이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제목이자 동시에 전문가들에게는 가장 논쟁적인 제목,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노릴 수 있는 그런 재치 말이다.
그렇다. 이 책은 이사야서를 ‘한 권으로’ 읽자고 소리 높이는 책이다. 이사야서를 ‘한 권으로’ 읽지 않는, 곧 ‘여러 권으로’ 읽는 구약 또는 이사야 전문가들이 너무 많으니, 어쩌면 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도 볼 수도 있으니, 이사야서를 한 권으로 읽자는 소리는 낯선 소리, 이상한 소리일 수도 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사야서를 연구하는 세계 신학계의 상황이다.
한국 신학계라고 사실 이에서 예외는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틀지움이 엄격한 풍토라, 보수 신학계가 진보 신학계의 흐름에 익숙하지 않고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일 기회가 쉬 생기지 않아 그 정도가 잘 가늠되지는 않지만, 한국 신학계의 이른바 진보 쪽이라는 곳에서는 이사야서를 ‘한 권으로 읽는’ 것은 낯선 일이고 비주류이며 ‘여러 권으로’ 읽는 것이 익숙한 일이고 주류이다.

역사비평의 ‘파괴적 이사야서 재구성’ 넘어서기

그 이전에도 이미 유대교 신학자와 몇몇 학자들이 간간히 주장하기도 했지만, 1892년 독일 구약학자 베른하르트 둠이 ‘이사야서’ 주석을 내면서 이사야서는 이제 더 이상 ‘한 권’이 아니었다. 둠은 주장하기를, 이사야 1-39장은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썼고, 40-45장은 바벨론 포로기에 살았던 익명의 선지자의 작품이고, 56-66장은 포로기 후 한 선지가가 기록했다고 했다. 이른바, 제1 이사야, 제2 이사야, 제3 이사야가 생긴 것이다.
둠의 이 주장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이른바 역사비평이라는 세계 구약학계의 새로운 해석 조류를 형성했다. 명석한 두뇌와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한 이 가설은 이후 활발한 자기 분화 과정을 거치면서 주류 해석으로 올라섰다. 물론 이 흐름과 함께 이사야서는 더욱 더 조각났다.
그런데 이런 조류에 한 차례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한국에서가 아니라 나라 밖에서 시작됐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사야서를 조각낸 급진적 역사비평 가설에 근본에서부터 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복음주의 진영의 학자뿐만 아니라 비평신학 내부에서도, 가설에 가설을 쌓다가 어느 듯 짐짓 확고부동한 과학적 이론을 주장하고 확신하게 된 역사비평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이사야서를 한 권의 통일된 본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역사비평학자들 스스로가 그렇게 추구해온 확실성에 더욱 가까울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이사야서 연구 경향의 바로 이러한 최근 흐름에서 시작한다. 세계 구약학계의 큰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는, 잘 준비된 젊은 학자 장세훈 박사는 역사비평의 희생양이 된 이사야서를 보면서 이 성경의 통일성을 재확인하고 논증한다.
장 박사는 이 책에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의 단일 저작을 주장하며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논증하는 전통적 접근 방식에서 시작해 편집비평적 접근 방식, 정경적 접근 방식, 문학적 접근 방식,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식, 주제적 접근 방식에 이르는, 이사야서의 통일성에 대한 현대의 연구사를 분석하고 평가한다.
이어 장 박사는 이사야서를 “파괴적으로 재구성한” 역사비평과 그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편집비평과 정경비평을 넘어 이사야서의 통일성을 문학적, 신학적, 함의적 관점에서 다차원적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장 박사는 이 연구서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사야서의 문학적 구조와 전 본문을 관통하는 신학적 메시지는 이사야서가 세 권이 아니라 한 권의 통일된 본문임을 확증한다. 전 이사야서 본문은 과거에 선포되고 읽혀진 본문일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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