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죄와 싸우라” ‘마지막 청교도 신학자’의 역저…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구체적으로 묘사 “값싼 은혜” 추구하는 한국교회 병적 현상에 유효적절한 처방책 제시


대한민국 밤하늘을 장식하는 수많은 네온 십자가들이 조롱 받고 있다. 조롱하는 이들의 못남보다는 그것을 밝힌 우리 그리스도인의 잘못이 훨씬 크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해,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값싼 은혜”로 만들어버렸다. 성화의 삶. 문제는 이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안의 죄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이 문제와 씨름한, “마지막 청교도 신학자”, “청교도 황태자”로 불리는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가 우리말(SFC 출판부)로 옮겨져 나왔다(제임스 패커가 쓴 서문 포함).
로이드 존스의 ‘로마서 강해’와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우리말로 옮긴이로 익히 잘 알려진, 청교도 전문가 서문강 목사(중심교회)가 번역을 맡았다. ‘존 오웬의 죄죽임 신학’으로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해 한국에 돌아와 총신대신대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청교도 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윤종훈 교수의 서평을 싣는다. 윤 교수는 곧 나올 신학지남 2004년 여름호에 “‘Doing The-ologian’:청교도주의의 족장, 대들보, 존 오웬(John Owen)의 생애와 사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평 - 윤종훈 교수 (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지금 한국 교회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1903년 원산 함흥의 회개 운동을 시작으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불붙은 성령의 불길은 이 땅을 뒤덮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한국 교회는 영적, 양적 성장이 둔화되다가 급기야는 하향 곡선을 긋게 되었고, 동시에 교회가 이 민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흥과 성장을 주도해왔던 한국 교회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의 윤리와 도덕의식 그리고 성도의 이원론적 신앙은 교인보다도 먼저 세인의 인구에 회자될 정도가 되었다. 시기적으로 유럽과 비교할 때, 한국 교회는 이유기를 지나서 성장기에 접어들어야 할 텐데, 성장 초기부터 잘못된 성장제일주의로 일관함으로써 부작용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 가운데 존 오웬의 ‘죄죽임론’이 한국 교회에 우리말로 소개된 것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다. 왜냐하면, 청교도신학의 거성이자 완성자인 존 오웬의 이 작품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의 본질을 삶의 지표가 되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필치로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삶의 신학”(Doing Theology)을 제창하였던 청교도들의 삶의 흔적과 신학사상은, 청교도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자부하지만 찾아보기 쉽지 않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병적 현장을 정확히 진단하고 치유하기에 가장 유효적절한 처방책으로 사료된다.
16-17세기에 영국에서 발생하였던 청교도운동은 수많은 청교도 학자들의 이론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학 등 전 영역에 대한 국가적인 개혁과 갱신을 추구한 운동이 아니었다. 오히려 교회의 예전(Liturgy), 전통(Traditions), 의식(Ritual)을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 교리이자 교회적 사명으로 이해하였던 당시의 로마가톨릭의 비성경적이고도 비신학적인 형식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모습과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미온적이고도 답습적인 개혁사상에 반기를 들고 예배와 삶의 혁신을 주창하였다. 청교도들은 성경과 교회신조(Creeds)에서 제시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 곧, 정결한 순례자의 인생(Purified Pilgrim Life)을 추구함에 그 근원적 기반을 두고, 사도적 교회로의 복귀를 선언함으로써 순수한 영성의 회복을 시도하였던 진정한 ‘영성 회복과 갱신운동’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존 오웬의 죄죽이기’라는 작품은 오웬이 남긴 1418개의 라틴어 논문과 32개의 고전적 원고 중 하나이다. 영국 왕 찰스 1세(Charles I)가 처형된 직후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호국경(Protectorate, 1653-1660)으로 취임하게 되자, 자신의 궁정 목사였던 존 오웬을 옥스포드 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하였다(영국에서 부총장은 한국이나 미국의 총장직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영국 총장은 명예직으로서 왕이나 왕비 또는 왕자나 공주가 이를 맡고 있으며, 실질적인 행정사무는 부총장이 시행한다). 부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오웬은 학교행정과 교과과정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으며, 청교도 사상과 신학에 입각한 교육정책을 구사함으로 성공적인 일대 개혁을 이룩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학생들을 진정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양육시키기 위하여 매주 행하였던 강해설교 내용들을 ‘죄 죽이기’(Of the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게 되었다(1656). 이 작품은 로마서 8장 12-14절을 주제 본문으로 삼은 강해설교이자 죄론(hamartology)에 대한 전형적인 개혁주의이자 칼빈주의에 입각한 신앙 해설서이다.
이 작품의 출판 동기는 당대의 “신앙고백자들의 마음과 영혼에 거하는 내주하는 죄의 잔존세력”의 요소인 수많은 죄와 유혹들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우 무능한 상태에 처한 양심에 대하여 죄죽임이라는 분명한 실천방향을 설정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효율성과 복음의 신비를 알고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항상 신자 속에 주입된 한 법(내주하는 죄)과의 영적 전투에서 주어진 “신자의 의무”(self-wrought-out)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주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복을 받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장은 서론으로서 죄죽임(Mortification)에 대한 성경신학적 접근을 통하여 로마서 8장 13절의 구조를 분석하여 죄죽임의 조건과 주체, 조성자 그리고 신자의 의무에 따른 하나님의 약속을 자세히 그려주고 있다. 여기에서 오웬은 진정한 성화의 조성자이자 저자는 다름 아닌 성령이심을 강하게 논증하고 있다.
제2-5장은 죄죽임의 필요성과 유용성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는 로마가톨릭의 성령이 배제된 인간적인 성화방식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율법폐기론자들(Anti-nomians),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이해하여 이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킴으로써 은혜를 통한 신자의 끊임없는 죄와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필요성과 유효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이들의 사상을 강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제6-14장은 죄죽임을 이루어가기 위한 일반적, 보편적 방안들과 특별한 방안들을 주도면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서 교묘하게 침투하는 죄악들을 제거하기 위한, 다양한 성령의 “복음의 수단들”(the gospel means) 곧, “성령에 의해 창조된 습관들”(Spirit-created habits) - 열렬한 기도와 말씀 묵상과 청종 그리고 죄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심 - 을 통하여 호흡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내주하는 죄와의 험한 전투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을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오웬의 저작전집(25권)을 살펴볼 때 ‘죄죽임론’의 신학사상은 그의 작품 전 영역에 넓게 퍼져있음을 볼 수 있다. 곧,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으로서의 죄죽임론이 그의 신학의 하부구조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존 오웬을 전공한 자로서 오웬의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다. 게다가 청교도 작품에 대한 전문 번역가인 서문 강 목사(중심교회)가 오웬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이 책을 번역하여서 더욱 기쁘다. 한국 교회에 청교도들의 신앙과 삶을 소개하는 데 일생을 헌신하고 있는 서문 목사께 참으로 감사를 전한다. 서평자가 영국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을 당시 영국 모 대학교의 영문학 교수는 내가 존 오웬의 신학사상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르길, “나는 영국 사람이고 존 오웬을 무척 사랑하고 존경하는 영문학교수이지만, 오웬의 글이 키케로풍(고대 라틴어풍)이어서 작품들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였다. 이처럼 오웬의 글이 매우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옮긴이 서문 목사가 이 작품의 내용과 사상을 보다 쉽고도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코자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했다는 흔적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진정 ‘역동적이고도 살아있는 삶의 신앙과 신학’을 사모하며 초대교회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모든 신학자들을 위시하여 목회자들 그리고 열정적인 그리스도인(studious Christians)들이 필수적으로 숙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평생 삶의 반려자로 삼아야 할 귀한 영혼의 메아리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이 작품을 가슴으로 숙독하는 독자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믿음과 삶의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곧 인생의 목적과 삶의 방향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설정하고 충실한 열매를 맺어가는 인생을 살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한국 교회는 하루속히 성장일변도신학과 ‘값싼 은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내게 하늘의 신령한 평화를 선언하기 전에는 기필코 스스로 평화를 선언치 말라”고 경고한 오웬의 영혼을 향한 외침의 소리를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한국 교회의 ‘삶의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윤종훈 교수 puritanism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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