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열린교회)

 열린교회 앞뜰에 단풍이 곱게 물들던 가을날이었습니다. 마당에 홀로 앉아 성경을 묵상하고 있을 때, 예고 없이 찾아 온 후배 목회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생명력 있는 목회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저는 짤막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죽음, 목회자의 자기 죽음입니다.”
   목회가 즐겁고 행복하다는 선배 목회자들의 고백 앞에 서면, 저는 늘 한 없이 작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영혼을 돌보는 섬김에 어찌 은밀한 기쁨이 없겠고,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워가는 목회 사역 중에 어찌 보람 있는 날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다시 뜨고 지 않으리만치 고통스러운 날들이 목회의 길에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길을 십자가 지고 가는 길이며,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17세기의 영국의 경건하고 박학한 청교도 존 오웬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신 경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신 것은 성도들이 그를 통하여 참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다.” 몇 천 명의 교인을 목회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한 사람을 목회하는 일이니 곧 그는 목회자가 지신입니다. 교인들은 몇 해 동안 목양하다가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목회자가 자신을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신을 어떻게 가르치고 돌보아야만 참되고 진실한 신자가 되어 갈 수 있는지를 터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가 성장을 거듭하던 어느 때에 얼음을 녹이는 새봄의 시냇물처럼 가슴에 녹아내리던 그리스도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얘야, 네가 열심히 목회하는데....네 몸 나 예수의 흔적이 있니?” 처음에는 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 같던 그 음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폭포수처럼 흐르고....불꺼진 교회당 한 구석에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산책을 할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그 음성이 생각이 나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아픈 여러 달을 지나면서 소박한 소원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제가 언제 이 고단한 목회 사역의 날개를 접게 되든지 그 날이 살아온 날들 중에는 가장 많이 주님을 닮은 날이 되고, 앞으로 살아 있을 날에 대하여는 그 날이 가장 주님을 덜 닮은 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자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회중을 섬기고, 또 한 시대의 지도자로 얼마나 크게 쓰임을 받는가 하는 것은 삶의 양태일 뿐 본질은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거스틴(A. Augustinus)의 이 기도가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온전함에 이르도록 빚어지는 동안 부디 이것들을 제게 더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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