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욱 목사(삼일교회)


통영선교를 갔다. 사역을 많이 도와주는 어떤 형제에게 회를 사 주었다. 염통이 두 개 있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먹었다. 굴도 사주었다. 온 몸에 숨은 동굴이 있는 것처럼 정신없이 먹었다. 이게 인간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고통을 호소한다. 배가 아프니,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항구 한 복판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없었다. 400미터 정도되는 은행까지 걸어가야 했다. 200미터는 인간답게 걸었다. 100미터는 공룡같이 구부린 모습으로 걸었다. 나머지 100미터는 도마뱀같이 거의 기어서 걸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마자 ‘펑’ 소리를 내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밖에서 이 소리를 들으면서 깊은 깨달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경외와 감사로 가득차게 되었다. 시편 기자는 인간의 몸을 보고, 감사의 찬송을 드린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이 날 나는 인간 몸의 기능과 시스템에 대해서 감사를 드렸다. 우리 몸은 독이 들어오거나 나쁜 것이 들어오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그 독을 몸 밖으로 내 보낸다. 식도, 위장, 십이지장, 대장, 직장의 순서를 밟을 시간이 없으면, 들어온 길을 역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이것을 구토라고 한다. 그러나 구토가 안될 때는 온 몸에 수분 총 동원령을 내린다. 그리고 강한 물살로 몸의 나쁜 것을 씻겨 내린다. 이것이 설사이다. 보통 때는 볼 일을 볼 때, 힘을 주어야 하지만, 이때에는 오히려 힘 조절을 해야한다. 너무 힘을 주면, 내장까지도 빨려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영적으로도 같은 원리를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 미움을 품는다. 심지어 시기, 질투를 품고 살아간다.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하는 소리를 가슴에 품고 살던 사울은 결국 시기심으로 미치게 되었다. 영적 설사가 없으면, 미치게 된다. 자신이 썩게 된다. 육체는 설사를 통해서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데, 우리의 영혼은 설사가 없어서 나쁜 것을 품다가 썩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베드로의 장점이 무엇인가? 닭이 두 번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의 말씀이 기억나서 곧장 통곡과 함께 회개한다. 그는 즉각적인 죄의 배출, 즉 영적 설사가 있는 회개의 사람이었다. 이것이 그를 살린 것이다. 용서가 왜 중요한가? 용서하지 않으면, 먼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썩는다. 독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당한 고통과 동시에 용서하지 못해서 당하는 썩음까지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는 영적 설사를 배워야 한다. 말씀, 기쁨, 감사는 품고, 미움, 원한, 질투는 다 배설하자. 이것이 설사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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