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같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를 ‘장인’ 또는 ‘숙련공’이라고도 부른다. 산정현교회에서 30년째 사역하는 나는 모든 것에 익숙하다. 그러므로 난 숙련된 목사 또는 장인일까? 그렇지 않다. 단순히 익숙해지기만 했다면 난 뒤처진 사역자다. 시간의 흐름으로 익숙해지기만 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든 성숙해가야 한다. ‘익숙’해지기보다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숙하다보니, 익숙해질 시간조차 없어야 건강한 삶일 것이다.

그렇게 난 ‘성숙’을 지향했다. 10년 동안 익숙해지고 또 20년, 30년을 익숙하게 살아왔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며, 그것이 손에 익는다 싶을 때 다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나는, 어떤 ‘익숙함’에 자리 잡고 있지 않은 것이다.

목사 안수 후 1년 만에 산정현교회에 부임했다. 나의 인생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나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익숙해지려 하기보다, 매일 변화를 도모했고 더 혁신적인 내일을 향한 오늘을 달리며 교회를 견인했다.

100년 역사 속에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역을 시도했다. 성도들에게 그런 체험을 하게 하는 나는, 한 자리에서 익숙함에 드러눕거나 게으름에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난 내일이면 또 달라질 나를 기대한다. 내일은 또 어떤 면에서 성숙할지. 어떤 성취감을 맛볼지. 때론 ‘정신없어 따라가기 힘들다’해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나 ‘익숙함’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기에, 앉는가 싶으면 또 일어서 달리는 것이다.

오랜 교회 생활 경력자의 경우, 모임이나 연합행사 등으로 다른 교회에서 예배할 때 익숙지 않은 그 교회 문화를 어색해하거나, 심지어 틀렸다는 생각도 하는데 매우 위험한 것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익숙해지기보다, 변화를 추구하며 잘못된 관행을 뒤집으려는 노력으로 성숙한 교회를 세웠다. 익숙함을 즐길 때 진취적 변화는 없다. 오늘이 오랫동안 이어질 뿐이다.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잘 모를 수 있다. 내일이 오늘과 다르고, 내년은 분명 올해와 다를 때 나는 성숙함을 지향하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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