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김권능 목사가 2015년 개척
북한 동포와 평화통일 위해 기도

인천한나라은혜교회는 탈북민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성도들이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김권능 목사와 성도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는 탈북민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성도들이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김권능 목사와 성도들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주 선한 능력으로 안으시네 그 크신 팔로 날 붙드시네”

찬양에는 가슴을 울리는 능력이 있다. 배고픔과 억압, 인권유린이 가득한 어둠의 땅에서 탈출해 자유의 땅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혜는 각별했고, 그러기에 찬양 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앙고백이 담겼다. 앞자리에 앉는 중년 여성도가 찬양을 하며 줄곧 눈물을 훔쳤던 것도 그 때문이다.

3월 셋째 주일 인천한나라은혜교회(김권능 목사) 예배 풍경이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는 탈북민 교회다. 숱한 어려움 끝에 한국 땅을 밟은 탈북민들과 그 가족, 그리고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해 온 한국인 등 총 60여 명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같은 탈북민인 김권능 목사는 “중국에서 몇 번씩 팔려 다닌 분들, 중국에 자녀를 두고 온 분들 등 상처 많은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북한에 잡혀가는 악몽을 꾸는 분들도 있다. 다 복음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극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탈북민 성도들에 대해 설명했다. 성도 중 35% 가량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로, 김 목사는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이사 와서 새로 등록하기도 한다. 북한을 위해 기도했던 분들이라 큰 거리감이 없이 잘 녹아들고, 또 신앙의 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매 주일예배 후에는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교제를 한다. 
매 주일예배 후에는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교제를 한다. 

교회는 2015년 12월 20일, 당시 신학생이었던 김권능 목사가 개척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 국경을 넘은 김 목사는 중국에서 처음 복음을 접했고, 탈북민 구출 사역을 하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4월 37살 나이에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자유민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김 목사는 자신의 표현대로 “하나님 앞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총신대 신학교 3학년에 편입했고, 총신신대원을 거쳐 탈북민 목회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인천한나라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권능 목사.
인천한나라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권능 목사.

교회 개척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주위의 돕는 손길들로 김 목사를 격려하셨다.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임대해 있던 상가 교회당 공간을 매입할 때,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와 신반포교회(홍문수 목사)는 큰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 이름은 ‘하나님 안에서 은혜 가운데 남과 북이 하나 되자’는 의미로, 각별한 교회 이름만큼 김 목사와 성도들의 다짐은 남다르다. ‘복음을 받은 자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아파 울던 자에서 치유하는 자로’ ‘인천에서 평양으로, 평양에서 열방으로’라는 3가지 교회 비전은 말로만 하는 구호가 아니라, 김 목사와 성도들이 두고두고 곱씹는 결심이자 소망이다. 공예배 때마다 북한과 제3국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한 기도와 복음통일을 위한 기도가 빠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강도 해산 출신으로 2016년 탈북한 안민수 성도(가명)는 “북한이 복음으로 통일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통일이 되면 나를 변화시킨 복음을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먼저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2018년 두 자녀를 데리고 탈북한 최주은 성도(가명)도 “예수님 믿기 전에는 돈 버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내려놨다”며 “예수님 더 잘 믿고 싶고, 고향 주민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고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탈북민들에게 남한 생활이 마냥 쉽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문화차이와 차별, 열등의식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때문에 교회는 의료봉사, 보이스코칭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지역 교회들과 정기적인 교류 시간을 통해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고 있다.

2010년 탈북한 박미혜 성도(가명)는 “탈북민들 일부만 보고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린 마음으로 탈북민들을 대해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고, 덧붙여 “모든 한국교회가 지친 영혼들이 위로받는 교회, 교회다운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와 성도 20여 명은 지난해 말 라오스-태국 국경에 있는 탈북 루트를 탐방했다. 이전에는 쫓기던 신분으로, 숨어서 걸어갔던 그 길을 당당하게 걸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느꼈다. 김 목사는 “쪽배를 타고 숨어서 건넜던 메콩강을 당당하게 한국 여권을 들고 돌아보면서, 상처들이 많이 치유됐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는 부활절을 앞두고 한 주간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고, 부활절에는 달걀을 삶아 이웃 주민들과 전도 대상자들에게 나눌 계획이다. 김 목사는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완전한 회복이자, 어둠에 대한 심판”이라며, 부활절을 맞아 “우리 교회에서 먼저 남과 북이 하나 되길 바라고, 장차 북한 땅과 세계 열방에 부활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길 다시금 소망한다”고 말했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 주일학교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출석하고 있다. 유치부 아이들이 세족식을 하고 있다.
인천한나라은혜교회 주일학교에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출석하고 있다. 유치부 아이들이 세족식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부.
초등학생부.

 

“북한 향한 증오가 기도와 눈물로 바뀌었습니다”

김권능 목사, 중국서 탈북민 돕다 10년 복역
하나님 은혜 교회와 북한 동포 사랑에 나눠

2011년 12월 19일 낮 12시 북한은 김정일 사망을 공식발표했다. 그리고 그때 중국 감옥에서 10년간 복역하고, 고문과 처형이 기다리는 북송을 앞두고 있던 김권능 목사(사진)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김정일 사망으로 어수선한 탓에 국경 너머 북한 세관에서 이틀이나 중국 호송원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5개월 뒤인 2012년 4월 17일 김 목사는 한국 땅을 밟았다. 도로가 얼지 않아 이송이 조금만 빨랐어도, 김정일 사망 발표가 하루만 늦었어도 김 목사의 생사는 보장할 수 없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인천한나라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권능 목사.
중국에서 10년간 복역하고 처형을 위해 북송을 앞두고 있던 차에 김정일 사망으로 극적으로 살아난 김권능 목사.

배고픔을 피할 생각으로 1997년 중국으로 건너간 김 목사는 이듬해 한국에서 온 최광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성경을 밤낮으로 읽었다. 이후 2000년 12월부터 중국과 몽골 국경을 다니며 여러 개의 탈북 루트를 만들고, 탈북민들을 탈출시켰다. 이 일로 북한으로 북송돼 3개월간 감옥살이를 한 뒤에도 다시 탈북민들을 돕는 길로 나섰고, 2002년 7월 중국 공안에 다시 붙잡혀 10년간을 좁은 감방에서 지냈다.

그렇게 북한 정권에 대한 배신감으로 증오만 가득했던 한 청년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같은 처지의 탈북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탈출 사역을 하게 하시고, 놀라운 기적으로 생명을 구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고스란히 인천한나라은혜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그리고 북한 동포들을 향한 기도와 눈물로 흘러가고 있다.

“많은 탈북민들이 그런 것처럼,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증오감이 가득할 거예요. 교회가 없이 북한에 자유가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재앙일 수 있어요. 복음이 들어가고, 복음으로 치유가 일어나야 합니다.”

김 목사는 올해 교회 표어를 ‘네 지경을 넓히리라’(출 34:24)로 정했다. 그는 “성도들에게 ‘우리가 살아왔던 경험, 상처와 고통을 넘어가자. 우리의 한계를 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고 권면하고 있다”며 “고난의 땅에서 나와 하나님을 믿게 된 자들로, 통일 후에 우리 성도 한 명 한 명이 북한 땅에서 한 교회씩을 세우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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