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시대에 따라 상황에 맞는 필요한 인재들을 등용해 뜻을 이루시는 것을 믿습니다. 최근 어려운 시국에 국보위 상임위원장의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여러 해 동안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는 모든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하는 운동에 앞장설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의 신변을 보호해 주시며 또한 언제나 모든 권세를 주시고…”

1980년 8월 열린 ‘국가와 민족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개신교 주요 교단 지도자들의 기도 및 설교 내용 중 일부다. 여기서 말하는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전두환 당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기도회가 열린 이때는 5·18 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로부터 20여 일 뒤 그는 스스로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얼마 전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 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다시 산 바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교계 지도자들이 찬동한 사실은 한국교회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돼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깨어있지 못해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우리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환자들이 입고 있다. 해결의 기미는커녕 오히려 강대강 대치 수위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지도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국정 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대통령실 브리핑에 따르면 대통령은 각 종단이 그간 의료개혁에 대한 정부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해 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한 종교지도자는 의료개혁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면서 정부의 노력에 부응해 종교계가 다 같이 성명을 낼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이 모였다는 자리에서 누구 하나 권력 앞에 쓴소리한 이가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물론 환자들이 있는 현장을 떠나는 의료진들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할 필요는 있지만, 국민 생명이 달린 문제를 장기화한 측면에서 어느 한쪽만을 탓하기 전에 정부와 의료계 양쪽 모두의 책임을 물었어야 한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갈등을 부추기기보다 지금의 갈등으로 불안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살피며 사안을 바라봄으로써 양측의 대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종교, 그보다 먼저 화해자의 사명을 부여받은 교회 지도자의 역할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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