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증경총회장)

전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제를 아는가? 그가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 어느 날 페르시아를 건국한 고레스왕의 무덤을 방문했다. 그때 그는 고레스왕의 무덤에 새겨진 글귀를 보게 된다. 묘비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왕 중의 왕인 나,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나, 고레스가 이곳에 묻혀 있다. 그대가 누구든, 그대가 어떤 사람이든, 그대 역시 한 정복자가 되어 내 무덤을 찾아올 것이다. 나 고레스도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하였지. 그러나 언젠가 나는 죽고 나의 제국을 정복한 자가 내 무덤을 찾아오게 될 줄을 미리 알고 있었노라. 그러나 그대의 제국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그대도 죽어서 나처럼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되리니…. 그대는 내 무덤에 손을 대지 마시오.”

일반적으로 정복자는 피정복자들의 흔적과 역사를 지우려고 한다. 그들의 지도자들을 먼저 죽이고 문화, 사상, 역사를 말살하며, 심지어는 정복당한 왕들의 무덤까지 없애 버린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제 역시 고레스왕의 무덤을 훼손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제는 고레스의 무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엎드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입고 있었던 왕복을 벗어서 고레스의 무덤 앞에 헌사한다. 이는 그가 페르시아를 정복하였지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정복당한 나라의 창건자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바치는 모습이었다. 그런 알렉산더 대제 역시 얼마 후 고열병으로 쓰러져 죽고 만다. 훗날 그가 이룬 위대한 그리스 제국은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페르시아의 고레스왕도 위대하지만 알렉산더 대제도 위대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고레스왕은 근동의 나라들을 정복한 왕이었지만 피정복 국가에 대해서는 포용을 하고 배려심을 아끼지 않았다. 성경을 보아도 고레스왕이 포로 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절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하물며 우리 교계 안에서 이겠는가. 교권이란 편 가르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전임자들과 각을 세우거나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 주어진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권력에 중독이 되면 끝날 때는 후회와 상처, 허무의 물꽃만 남기고 만다. 그러나 작은 교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섬김의 기회로 삼을 때, 그는 불멸의 역사를 남기고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시대에는 고레스와 알렉산더의 만남이 필요하다. 앞서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후배들에게 경고와 충고를 줄 수 있어야 하고, 뒤따르는 자들은 그 경고와 충고 앞에 기꺼이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들 주변에 린치핀들이 있어야 한다.

린치핀이란 말은 나사의 톱니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고정을 하는 핵심축을 말한다. 마차나 자동차가 되었건 비행기가 되었건 간에 앞으로 나아가고 이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사가 틀어지지 않고 잘 돌아가도록 하는 핵심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스 고딘은 이 린치핀을 예술적 감성을 가지고 창의적 인간관계를 조성하며, 창의적 조직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예술적 감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창의적 인간관계를 맺고, 창의적 조직 문화를 이루어 가는 사람이 진짜 대체 불가의 존재고 조직을 성공하게 만들게 한다는 것이다.

주변 참모들이 이런 린치핀 역할을 하지 않으면 항상 교권은 타락하거나 편 가르기를 하게 돼 있다. 고레스왕의 비문이 알렉산더 대제에게 린치핀 역할을 했던 것처럼 리더의 주변에는 이런 린치핀들이 많아야 한다. 아부만이 아닌 진심의 말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이 린치핀의 영향을 받은 리더는 균형을 갖고 섬기게 된다.

예로부터 잘못된 권력은 중독이라고 했다. 현재 권력에 중독이 되면 지난 전임자들의 역사를 지우거나 부정하려 하고 자기만의 역사를 쓰려고 한다. 알렉산더도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또 고레스의 비문이 알렉산더를 역사에 남는 대제로 기록하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레스의 무덤은 250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보존돼 있다. 우리 시대에 린치핀과 고레스왕의 비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겨보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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