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몇 년 전 성탄절을 앞둔 춥고 어두운 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갔다.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김밥을 파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시간이 촉박해 함께간 아들에게 인터미션 때 김밥을 사자고 했다. 그리고 1부 끝난 후 할머니를 찾았으나 그분은 거기 없었다. 연주가 시작되니 그 할머니도 떠난 것이다. 2부 연주 내내 할머니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지난해 성탄절 직후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눈 때문에 미끄러운 길을 걷는 중,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앞에서 넘어졌는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달려가서 일으키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위해 119 호출을 생각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분은 옆에 정차된 택시 기사였다. 점심 식사용 김밥을 사서 차로 돌아오다가 넘어진 것이다. 떨어진 김밥을 차에 넣고, 그분을 살피던 중 오른쪽 다리를 보고 놀랐다. “아~”하고, 탄식이 나왔다. 한쪽 다리가 의족이었다. 일어서려는 그분을 부축해 운전석에 앉히고 돌아왔다. 마음이 짠했다.

그렇다. 무엇이든 ‘지금’ 해야 한다. ‘나중에 하자’며 미루면 영영 못 할 수 있다. ‘내년에’, ‘5년 후에’ 또는 ‘사십이 되면’ 등등 미루면서 잃고 마는 것이다.

나는 김밥을 살 수 있는 그때 ‘지금’을 놓쳤다. 그래서 어떤 경우든 내 손을 필요로 하는 현장이라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김밥 할머니는 놓쳤지만 택시 기사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 내 손이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하며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김밥 할머니를 못 잊은 것은 마음에 빚으로 남은 탓일 것이다. 다시는 ‘지금’을 놓치거나, 누군가에게 떠넘기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지키고 있다.

2024년! 지난해에 넘긴 일은 없는지 더듬었다. 그리고 올해는, 해야 할 일을 반드시 마치리라 다짐한다. 이제 산정현교회에서의 30년째 사역을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후회 없이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다.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날, 스스로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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