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삼상 7:12)

 

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우리 삶의 현장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일들을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해석하는지요? 관점이 바뀌면 해석이 바뀌고, 해석이 바뀌면 적용이 달라집니다. 곧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제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시각에서 되새겨봅시다.

1.‘에벤에셀’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불려진 CCM을 꼽으라면 작곡가 손경민 목사의 ‘은혜’일 것입니다. 가사 중에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 하나님의 돌보심과 베푸심에 대한 감동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한 해를 뒤돌아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 본문에 사무엘 선지자가 돌을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부릅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더 풀어서 말하면 ‘여기까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인 사무엘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게 됩니다.(삼상7:14) 그리고 사무엘은 백성들을 미스바 광장에 모이게 합니다. 백성들이 광장에 모여 금식하며 기도할 때 블레셋 사람들이 침공합니다. 사무엘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하게 됩니다.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 기념비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부릅니다. 자신들의 승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한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과 도우심이 지난 한 해 동안 함께하셨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왔을 때, 고난의 밤을 만나 앞길이 캄캄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으면 살아오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무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듯, 우리들의 삶에도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분명한 믿음의 고백, 은혜의 기념비가 세워져야 합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올 한 해를 감사로 해석하며 살아갈 때 더 존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임마누엘’로 함께해주셨습니다.

주님의 다른 이름이 ‘기묘자’입니다. 이 말은 ‘기이하고 묘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도우신 사건들이 기록돼 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돼 나올 때 10번에 걸쳐서 신비한 방법들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 신비한 방법으로 바다를 걸어서 건너게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서 고기를 배달하여 먹게 하심으로 힘을 얻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였고, 결국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금식으로 부르짖던 소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승리의 함성으로 바뀌게 됩니다. 빼앗겼던 성읍을 도로 찾게 됩니다. 한 번의 우레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땅에 평화가 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함께 하십니다. 광야생활 40년의 세월 동안 하루도 구름기둥이 떠난 적이 없습니다. 날마다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듯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주님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면 인생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울음이 변하여 찬송이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문제로 출발한 기도제목이 변하여 간증이 됩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도우심은 과거형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스바에서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함께하십니다. 임마누엘로 함께하십니다.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항상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3. 새해에도 ‘여호와 이레’로 함께하실 것입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 금식하며 기도할 때 블레셋이 침공해 오자,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부탁합니다. 어려움 앞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소망이란 말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믿음과, 하나님이 행하실 일에 대한 기대감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망을 갖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소망이 지속되지 못합니다. 미스바 광장에서 금식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분명 도우신다는 기대가 있었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소망대로 승리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모리아 산에 가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을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죽이려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시고, 아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을 손수 준비해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아브라함은 그 장소를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곧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미리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잠시 후면 새해를 맞이합니다.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운동장에 첫 발자국을 내며 걸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새해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혹여 잘못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크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등 뒤에서 도와주시며,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준비하셔서 그의 자녀인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해석이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면 적용이 달라지고, 인생의 결론이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분명히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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