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익 목사(창성교회)
함성익 목사(창성교회)

나는 지난 12월 11일 전남제일노회와 전라노회 분립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오전에는 광주새한교회에서 오후에는 영광대교회에서 분립감사예배가 진행됐다. 훈훈한 노회 분립의 여정을 보면서 소회를 남기고자 한다.

1.전라도의 복음화

전남은 복음화율 국내 최대의 신앙의 곡창지라고 볼 수 있다. 최초로 한글 성경을 번역한 곡성 출신의 이수정, 최다 순교자를 낸 영광 염산교회, 모든 교인이 순교한 영광 야월교회, 최초 여성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 사랑의 원자탄, 한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의 순교 등 숭고한 정신적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성지이기도 하다.

호남신학대학교 차종순 박사는 호남지역의 복음화율이 높은 이유 중의 하나로 의료 선교를 손꼽기도 한다. 미국 남 장로교 한국선교회가 군산, 전주, 광주, 목포, 순천에 선교병원을 세우고 선교활동에 전념한 것이 이 지역의 복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여기에 복음 전파와 교육 선교가 더해지면서 3박자 선교가 조화를 이루었다고 보는데. 균형 있는 선교를 위하여 선교사들의 전략과 지혜가 돋보인다.

1893년 미국 남장로회는 전라도에 ‘7인의 선발’을 파송한다. 전킨(W. N. Junkin, 전위렴), 테이트(L. B. Tate, 최의덕), 매티 테이트(Mattie S. Tate, 최매티), 레이놀즈(W. B. Reynolds,이눌서), 데이비스(Linnie Davis) 등 일곱 명의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입국하였다.

이들은 7인의 선발대로 불리웠고, 전주, 군산, 목포, 광주, 순천을 중심 선교지역으로 삼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 외에 교육과 의료선교에 중점을 두었다. 이 때 미국 남 장로교 선교회는 삼각선교의 원칙에 입각하여 모든 선교사가 동일한 일에 매진하기보다는 전도와 목회를 담당하는 복음 선교사 팀, 그리고 국민 계몽과 근대식 교육의 도입과 확산에 힘쓰는 교육 선교사 팀, 병원을 설립하여 보건과 위생, 간호와 진료에 힘쓰는 의료 선교사 팀으로 나누어 유기적으로 선교에 임했다.

이와 같이 호남지역의 선교에 남 장로회의 선교사들이 선봉장이 되어 광주와 목포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내륙은 물론 해안과 도서지방까지 복음의 그물을 넓게 펼쳐 나가게 되었다.

(1) 군산 복음화

군산은 호남 선교의 중심지이다. 1895년 드루 선교사와 전킨 선교사가 수덕산에 초가집 두 채를 매입하여 포교소와 진료소로 사용함으로서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1896년 7월 20일 김봉래, 송영도 차일선에게 최초로 세례가 베풀어졌고 이후 교회는 성장세를 이루었다. 이후로 구암교회, 개복교회, 지경교회, 남전교회, 송지동 교회 및 영광중, 영광여고와 제일중고등학교와 예수 병원등을 설립하였다.

(2) 전주 복음화

윌리웜 레이놀즈는 전주에 선교본부를 설치하고 전주 복음화에 힘썼다. 그는 전주 서문 밖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으면서 성경번역에 몰두하여 1900년 신약성서 완역, 1910년 구약성경 완역에 이바지했다. 레이놀즈는 1911년 독노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3) 목포 복음화

1897년 목포항이 개항한 이후 목포는 선교활동의 유리한 거점이 되었다. 호남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유진벨 선교사는 전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목포양동교회’를 세우고 성경보급에 힘썼다. 1년 만에 신자가 30여명이 되었고, 1906년에 당회를 구성하여 계속 부흥을 이루었다.

배유지 선교사는 계속해서 선교활동을 하여 1898년 9월 11일에 목포선교부를 개설 하였다. 동년 11월에는 오원 선교사에 의해 목포 진료소가 개설 되었다.

(4) 광주 복음화

유진 벨과 오웬은 양림리에 여성들의 숙소와 학교, 사랑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시 사택을 건축하였다. 1904년 12월 25일 성탄절 기념예배를 유진벨의 임시 사택에서 드림으로서 광주에서의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양림리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2. 전라노회의 태동과 약사

우리 총회는 1907년 9월 17일 평양에서 ‘죠션젼국독록회’가 조직되어 출발하게 된다. 독노회는 산하 7개 대리회가 전국에 조직되었다. 경충, 평북, 평남, 경상, 황해, 전라, 함경 대리회였다. 그후 1911년 : 대구에서 (제5회 독노회)에서 대리위원회를 폐지하고 노회를 조직하기로 가결하고 1912.9.1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7개 노회로 개편하여 ① 평북노회 ②평남노회 ③ 황해노회 ④경충노회 ⑤전라노회 ⑥경상노회 ⑦함경노회를 구성하게 된다

그 후 전라도 지역은 크게 부흥하여 5년 후 1917. 9.1 서울에서 제6회 총회에 전라노회를전북과 전남노회로 분립하게 되었고 분립 당시 전남노회는 전남지방과 제주도를 영역으로,한국인 목사 6명과 장로 20명, 조직교회 15곳이 소속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1922.10.2 : 제11회 총회결의에 의하여 순천노회로 분립하고 1927.10.10 : 제16회 총회결의에 의하여 목포노회로 분립하고 1959: WCC적인 에큐메니칼 노선을 지지하는 일부 회원들의 불법으로 이탈하였고1979.9.20: 대구 동부교회 제64회 총회 분립한 후 1979. 11. 6 : 서울 청암교회에서 모인 제64회 속회총회 결의를 얻어 광주노회와 동 광주노회를 분립하였고 1994. 9. 27 : 송정중앙교회에서 모인 제79회 총회결의 광주지역 3개 노회를 5개 노회(전남, 광주, 동광주, 서광주, 남광주)로 분립하고 1994. 10. 13 : 광주새한교회당에서 서광주노회를 조직하고 1999. 4. 13 : 담양중앙교회당에서 모인 제99회 정기노회에서 전남2노회와 광주3노회가 합동한 후 2005. 4.12: 영호남노회 합동정비위원회(위원장:박갑용 목사)의 주관으로 서광주노회(노회장:김홍기 목사)와 서광주노회(노회장:유명석 목사)가 광주신일교회당에서 합동한후 2005.6.30: 노회합동전권위원회(위원장:장종섭 목사)의 주관으로 서광주노회(노회장:최복수 목사)와 전남제2노회(노회장:김종호 목사)가 영광대교회당에서 합동하고 노회 명칭은 서광주노회로 하게 되어진다

2005. 9. 27 : 1979년 분립되었던 총회가 대전중앙교회에서 제90회 총회에서 다시합동하고 2005. 10. 19 : 광주새순교회에서 모인 제105회 4차 임시노회에서 북 광주노회와 합동하고 2007. 7. 16 : 동명측과 노회 이름이 같아서 합동후속처리 위원회의 방침대로 총회사무실에서 제비뽑기를 하여 본 노회가 새 이름을 갖게 되어진다.

2007.7.16 : 담양중앙교회에서 모인 제107회 제2차 임시노회에서 노회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담아서 노회명칭을 전남제일노회로 결의하고 2016.9.26 : 제101회기 총회결의에 의하여 광주제일노회를 분립하고 2017. 9. 21 : 제102회기 총회에서 전남제일노회와 서광주노회 합병에 대하여 총회가 결의하고 2023년12월11일 전남제일노회와 전라노회가 분립하게 되었다.

금번 전남제일노회(조직54개)(미조직67개)와 전라노회(조직24개)(미조직19개)의 분립에 과정이 순적하게 이루어진 것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아울러 총회 산하 많은 노회들도 이번 분립의 과정과 결과를 교훈삼고 노회와 총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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