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우리 위해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을 만납시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0)

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송광현 목사(완도 고금중앙교회)

여러분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 본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소망입니다.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해방의 날을 기다립니다. 곤경의 빠져 신음소리를 삼키며 사는 사람들도 회복의 날을 기다립니다.

신앙 역시 기다림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1. 진실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

박사들은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왔습니다. 별을 따라 도착했지만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예루살렘성은 너무 조용합니다.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 앞에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유대 땅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왔습니다. 그럼에도 박사들은 메시야를 찾아왔고,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뵙는 것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기다리느냐에 있습니다. 주님은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에게 합당한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과 안나’도 아기 예수를 만나고 품에 안아보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니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안나 또한 경건한 삶을 살며 성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야로 금식하고 기도하며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간절하게 사모하는 사람, 진실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으로 꼭 만나야겠다는 신실함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아기 예수를 만난 것은 아닙니다.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려왔던 동방박사들과 시므온과 안나에게 아기 예수를 만나는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세상 속에서 분주한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과 더불어 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2. 인간적인 명분으로 메시야를 맞이하면 혼란이 옵니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그 별이 메시야의 나심을 알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 길의 고단함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 땅까지 찾아와서, 메시야가 예루살렘 왕궁에 계실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왕궁에서 새로 나신 메시야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헤롯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게 되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 일로 인해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롯왕을 만난 결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 이 일로 인해 베들레헴에는 통곡소리가 가득하게 됐습니다. 헤롯의 잘못된 욕망은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메시야 탄생으로 기쁨과 축복이 넘쳐야 할 때에 거꾸로 슬픔과 애곡이 넘쳐났습니다.

신앙생활은 세속적인 생각과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성탄절을 단순히 사람들만의 축제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마저 성탄절을 세상적인 생각으로 대한다면 이 땅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도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없는 성탄절이 되고 있습니다. 대신 다른 것들이 성탄절의 주인공이 돼 버렸습니다.

3. 우리를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성탄절의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마음 중심, 삶의 중심, 믿음의 중심에 구주 예수님이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왜 사람으로 오셔야 했는지 그 목적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한없이 기쁘고 은혜로운 날이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의 보좌를 떠나 낮은 곳으로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실 때 많은 이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들은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오신 구세주께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의 시므온도 사람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 두었습니다. 성전을 찾아 정결예식을 치르고 부모의 품에 안겨 나오는 아기 예수님은 여느 아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로 오신 그리스도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무엇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목적이 달라지고, 인생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길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세주 예수님,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을 중심에 두고 성탄절을 맞이해야 합니다.

4. 우리는 또 다시 기다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초림 때는 많은 사람들이 구세주의 오심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 받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꼭 같은 모양으로 오셨기에, 낮고 초라한 짐승들의 우리에서 태어나고 구유에 눕히셨기에 분명 만왕의 왕이시지만 백성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왕이신 주님을 알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전해도 사람들은 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이신 주님은 사명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초림 때와 다르게 주님의 재림 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피할 수도 없고, 모르는 체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 주님은 천군천사들과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온 우주가 알게 될 것입니다.

초림이 언제인지 잘 몰랐던 것처럼 재림도 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면서 초림처럼 재림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소망 중에 기다리던 사람이 아기로 오신 구세주를 만나 뵙고 경배하며 품에 안고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 것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분명 심판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뵐 것입니다. 우리의 초점을 구주 예수님께 고정하고 소망으로 기다리며 살아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찬양하며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매년 맞이하는 성탄절의 기쁨 속에서 또 다른 기다림으로, 소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기다려야 만납니다.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서 나신 성탄의 은총이 우리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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