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과 WCC 파동 속 교단 정체성 수호
다섯 총회장 배출, 한국교회 탁월한 지도력도 발휘

총회 현대사의 중심에 언제나 대전노회가 있었다

총회 역사에서 대전노회의 존재는 몹시 중요하다. 한국장로교회에 중요한 이정표라 할 만한 커다란 사건들 속에서 대전노회는 항상 중심에 있었고, 그때마다 노회 스스로 커다란 변천을 겪기도 했다. 이를 총 망라해 정리한 역사집이 발간됐다.

대전노회(노회장:김정민 목사)는 제140회 정기회를 기념해 <대전노회 70년사>를 발간하고, 올해 10월 21일 대전중앙교회(고석찬 목사)에서 발간 감사예배를 드렸다.

대전노회역사편찬위원회(위원장:신종철 목사)가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발간한 <대전노회 70년사>에는 1952년에 설립된 이후 갖은 영욕의 세월을 보낸 대전지역 교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게는 한 노회의 스토리이지만, 크게는 한국교회의 굴곡들을 상징하는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대전노회 출범을 선포하며 1952년 5월 20일 대전제일교회에서 열린 제1회 정기회의 모습.
대전노회 출범을 선포하며 1952년 5월 20일 대전제일교회에서 열린 제1회 정기회의 모습.

신학사수 위한 대전노회 설립

제37회 총회 결의로 1952년 5월 20일 대전제일교회에서 제1회 대전노회 정기회가 회집됐다. 당시 대전 공주 논산 일대를 중심으로 20개 교회(8개 당회)가 주축을 이루어 노회를 조직했으며, 초대 노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역사상 유일하게 세차례 총회장을 지낸 인물인 이자익 목사가 선출됐다.

대전을 비롯한 충남 일대는 선교사들의 예양협정 당시 감리교 선교구역이었다. 그러나 서천 부여 등 충남 서남부지역은 미국남장로교 군산선교부의 활동으로 여러 장로교회들이 세워져있었으며, 당초 전북에 속해 있다가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충남으로 옮겨진 금산군에도 여러 장로교회들이 존재했다.

특히 1936년 예양협정이 폐지되면서 대전 일대에도 대전제일교회를 시작으로 장로교회들이 본격적으로 개척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6·25전쟁 발발로 이북에서 내려온 장로교 목회자와 성도들이 대전에 정착하면서, 노회를 조직할 만한 교세가 확보됐다. 이런 배경에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기에 대전노회 창립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1958년 3월 18일 거행된 대전신학교 제1회 졸업식. 대전신학교는 내년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1958년 3월 18일 거행된 대전신학교 제1회 졸업식. 대전신학교는 내년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더 결정적인 이유도 있었으니, 바로 자유주의 신학에 맞서 보수주의 신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앞서 제37회 총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신학교 김재준 교수에 대해 징계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에 대해 충남노회 다수 회원들이 반발하며 자유주의 노선을 지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이자익 양화석 목사 등이 앞장서 지역 교회들을 그 흐름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대전노회 신설을 추진했다는 것이 <대전노회 70년사>의 설명이다.

첫 정기회에서는 이북에서 홀로 월남한 김진걸 강도사의 목사 임직과 여전도회연합회의 조직 등이 이루어졌으며,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가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와 고군분투하던 엘머 보이어(한국명 보이열) 선교사를 각부 협조위원으로 받기도 했다. 기운찬 시작이었다.

대전신학교의 개교

1946년 대전제일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만제 목사는 대전YMCA, 미국남장로교 대전선교부의 설립에 이어 대전노회 설립에도 산파역을 담당했다. 아직까지 장로교회들의 불모지와 같은 대전 일대에서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역자들이 필요했다. 김만제 목사는 이자익 목사와 협력해 노회 설립 이전인 1950년에 대전고등성경학교를, 노회 설립 2년 후인 1954년에는 대전신학교를 잇달아 세웠다.

대전에서는 최초로 열린 제44회 총회가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하고 있다.
대전에서는 최초로 열린 제44회 총회가 대전중앙교회에서 개회하고 있다.

야간과정으로 출발한 대전신학교는 빠르게 발전하며, 제41회 총회에서 지방신학교로 인준을 받는다. 이후 예장통합 측의 이탈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재건에 성공해 1984년 중부대학교 설립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이후 1987년 대전신학교로 환원하여 많은 사역자들을 양성해왔으며 내년 개교 70주년을 앞두고 있다.

2019년 노회회관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2019년 노회회관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예배.

WCC의 격랑에 휩싸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로 인해 총회가 분열할 당시 대전노회는 그 중심에 있었다.

1959년 9월 24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44회 총회가 열렸다. 대전충남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장로교 총회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지만, 결과까지 좋지는 못했다. 시작부터 경기노회 총대 시비 등으로 심상치 않던 총회 분위기는 결국 총회장 노진현 목사의 정회선언으로 파행됐다.

장로교 총회는 승동 측과 연동 측으로 나뉘었고, 이후 합동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교단을 이루며 결별한다.

특히 대전노회는 설립자 양화석 목사가 승동교회에서 속개된 제44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당선되는 경사 속에서도, 교단 분열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많은 교회들의 이탈로 교세가 크게 약해진 대전노회는 1961년부터 충남노회와 합병 기간을 갖는다.

교세 회복으로 노회를 재건해 이름을 되찾기까지는 약 6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967년 9월 21일 서울 평안교회에서 열린 제52회 총회는 대전노회와 충남노회의 분립을 허락한다. 그해 10월 24일 서대전교회에서 회원 28명이 모여 제31회 정기회를 개최하며 대전노회의 명맥은 다시 이어졌다.

제90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된 황승기 목사(사진 오른쪽에서 3번째), 바로 왼쪽이 제58회 총회장 박요한 목사, 다시 왼쪽이 제94회 부총회장 박정하 장로.
제90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된 황승기 목사(사진 오른쪽에서 3번째), 바로 왼쪽이 제58회 총회장 박요한 목사, 다시 왼쪽이 제94회 부총회장 박정하 장로.

교세 확장과 지도자 배출

재건된 대전노회에 더 이상 침체나 퇴보는 없었다. 재건 당시 회집된 인원이 28명에 불과했던 규모는 7년 후 열린 제44회 정기회에서 58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그리고 다시 1985년 제66회 정기회에서는 109명, 1991년 제78회 정기회에서는 160명으로 숫자가 껑충 뛰어오른다.

이처럼 꾸준히 교세를 확장한 대전노회는 1991년 제79회 정기회에서 서대전노회 동대전노회와 발전적인 분립을 결의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듬해 제77회 총회의 결의로 대전지역에서는 3개 노회 시대가 시작된다.

이런 성장 속에서 대전노회는 총회와 한국교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유능한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역대 총회장인 양화석 목사(제44회) 박요한 목사(제58회) 이영수 목사(제65회) 황승기 목사(제90회) 최병남 목사(제93회)와 부총회장을 지낸 박정하 장로(제94회)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기념비적인 대전노회 제140회 정기회에서 신구임원들이 교체식을 갖는 중이다.
기념비적인 대전노회 제140회 정기회에서 신구임원들이 교체식을 갖는 중이다.

초창기 대전노회의 대표적 지도자였던 양화석 목사는 예장통합과의 분열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총회장을 맡아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는 데 앞장섰다. 대전남부교회를 담임하면서 대전노회 제11대 노회장을 지낸 후 총회장에 취임한 박요한 목사는 총회의 발전적 기틀을 다지며, 은퇴 후에는 평생 낙도선교에 헌신하는 본을 보였다.

이영수 목사의 총회장 재임기간에는 일만교회 운동이 시작되고, 총회회관이 건립되며, 총신 양지캠퍼스가 조성되는 등 한국교회 장자교단으로서 면모가 우뚝 섰다. 2005년 총회장이 된 황승기 목사는 소위 비주류파동으로 분열했던 예장개혁과 26년 만에 합동하는 성과를 이루었고, 3년 후 그 뒤를 이은 최병남 목사도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총회를 여타 장로교단과 함께 개최하며 한국교회의 연합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 지도자와 더불어 대전노회는 총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적 노회로서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대전노회 설립과 동시에 조직된 대전노회여전도회연합회는 군선교를 비롯한 각종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이다.
대전노회 설립과 동시에 조직된 대전노회여전도회연합회는 군선교를 비롯한 각종 사역들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이다.

하나님과 계속 동행하는 미래

현재 대전노회는 5개 시찰에 113개 교회와 기도처가 몸담으며, 대전 논산 금산 일대의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국내외 선교사역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미래자립교회를 위한 지원사역에도 전국적인 모범을 보이고 있다.

[대전노회 70년사] 표지.
[대전노회 70년사] 표지.

지난해 노회 설립 70주년과 140회기를 맞이한 대전노회는 올해까지 역사집 편찬 등 각종 기념사업을 펼친 바 있다. 앞으로도 대전노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나가며, 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사명에도 앞장선다는 다짐이다.

증경노회장이자 역사편찬위원장인 신종철 목사는 “대전노회 70년사를 정리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은혜의 발자취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대전노회와 동행하시며 더 큰 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한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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